2019년 부산시 소재 공공기관에 근무하던 부장 A씨와 팀장 B씨는 부정 채용, 사기업 법인카드 사용 등 기관장의 비위 행위를 알고 이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그러나 권익위 조사원이 다녀간 다음 날부터 온갖 불이익을 겪게 됐다고 두 사람은 증언했다.
"A씨와 B씨가 팀원에게 인격 모독성 발언을 했다"는 사실무근의 제보가 등장한 게 시작이었다. 기관장은 제보를 근거로 이들을 평사원으로 강등했고, 인사위원회는 두 사람에게 각각 정직 1개월과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기관장은 또 다른 채용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그해 11월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은 지속됐다. 두 사람은 업무와 상관없는 공간에 격리돼 1인 근무를 하거나 집단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다.
A씨와 B씨는 결국 2019년 9월 신고자 보호조치를 신청했다. 권익위는 4개월이 지나서야 신청을 기각하면서 기관에 징계 절차를 다시 밟으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 권고조차 이행되지 않았다. 기관은 징계를 일시 중단했다고 권익위에 보고하고는 나흘 만에 재개했다.
두 사람은 결국 올해 2월 두 번째 보호조치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들이 신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경위를 조사해달라고도 권익위에 요청했다. A씨와 B씨는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사내 보복 조치에 가족들의 삶마저 피폐해졌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보호 신청이 받아들여진들, 권익위가 이런 암울한 상황을 적극 타개해줄까. 두 사람의 회의감은 깊다. "신고자 관리가 철저히 될 거라고 기대한 게 환상이었어요."(B씨)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 신고할 자신이 없네요. 평범한 직장 생활이 유일한 소망입니다."(A씨)
평범한 시민이라도 조직 내 부조리를 신고할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국가가 내 신변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들 신고자가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법적 보호 장치를 두고 있다. 2001년 공공기관 및 공직자의 부패행위를 신고한 사람(부패행위신고자)을 보호할 부패방지권익위법을 제정해 이듬해 시행했고, 2011년엔 보호망을 민간·공공 영역 전반의 공익침해 행위 신고자(공익신고자)로 넓히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시행했다.
공익신고자는 이에 따라 권익위에 신변 보호나 신분·인사상 불이익조치 금지를 신청할 수 있고, 부패행위신고자 또한 비슷한 신청 권한을 갖는다. 신고자 신분을 공개해선 안 된다는 비밀 보장 의무를 어긴 자를 밝혀달라는 요청도 할 수 있다. 권익위는 신고 내용이 적법한지, 불이익이 실제 있었는지 등을 조사해 인용 여부를 결정하고, 신고자 소속 기관에 보호조치 이행을 권고하게 된다.
문제는 보호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비율이 결코 높지 않다는 점이다. 권익위가 2019년 발표한 보호조치 신청 인용률은 58.7%다. 60%에도 못 미치는 비율이지만 이마저 과대평가된 수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은옥 참여연대 간사는 "권익위의 인용률은 1차 조사를 통과해 심의위원회에 올라온 신청 건에 한해 산정된다"면서 "권익위가 조사 과정에서 부적격 신청으로 판단하는 '각하' 및 '종결'은 통계에서 제외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익위가 정의당 배진교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중도 탈락' 신청분까지 포함해 계산한 2011~2021년 보호조치 신청 인용률 평균치는 공익신고자 42.6%, 부패행위신고자 25.4%였다. 전체 신청자의 절반도 안 되는 셈이다.
현행법은 권익위가 보호조치 신청을 접수한 뒤 60일 이내에 인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참여연대가 최근 10년간(2011년~올해 4월) 신고자 보호조치가 인용되는데 걸린 기간을 분석했더니 공익신고자는 신청일로부터 평균 124.2일, 부패행위신고자는 126.5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각 4개월가량으로 법정 시한의 두 배를 넘는다.
높지 않은 가능성과 긴 소요 시간을 뚫고 보호조치 대상자가 되더라도 이 중 3분의 1가량은 불이익조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관들이 권익위 권고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분석 결과 최근 3년간(2018년 5월~올해 4월) 권익위가 이행 여부를 점검한 보호조치 114건 가운데 31건이 이행되지 않았다.
미이행 비율이 높은 이유로는 낮은 처벌 수위가 먼저 꼽힌다. 권익위는 결정된 보호조치를 정해진 기한까지 행하지 않는 기관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최근 3년 미이행 31건 중 실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 경우는 5건에 그쳤다. 이행 여부 점검이 허술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보호조치 인용 6개월 후 권익위가 전화해서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는지 물은 게 전부"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권익위는 신고자 보호조치 이행 여부를 2년간 6개월 단위로 확인해야 한다.
경험자들은 당국부터가 신고자 보호에 미온적이라고 성토한다. A씨는 "그동안 권익위 담당자가 세 번 바뀌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신고의 정당성이나 불이익을 받은 경위를 증명하는 것은 신고자의 몫'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라며 "실제로 보호조치가 필요한 상황인지 적극적으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B씨는 "보호 신청 후에도 불이익 조치가 계속됐지만 권익위는 대응하지 않았다"면서 "결국 혼자서 비용과 시간을 들여 노동위원회를 찾아다니며 '부당 인사' 판단을 받아내야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고자 보호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익신고자를 변호하고 있는 김두나 변호사는 "보호조치가 인용되더라도 피신고기관에서 '인용 결정이 잘못됐다'며 소송을 걸면 오랜 법적 공방에 시달리는 게 신고자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복 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상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은 "피신고기관이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돼 있지만, 실상 불이익 조치가 거듭되면서 신고자가 두 번 이상 보호 신청을 해서 인용받는 사례가 꾸준히 나온다"면서 "권익위가 신고 보복을 하는 기관을 적극적으로 형사 고발하고, 검찰과 법원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