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은행 책임 어디까지?...1년 넘게 결론 못 낸 금융위

입력
2021.09.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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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해, 12년 595억→20년 7,000억
금융사·피해자·통신사 간 배상 분담 놓고 장고
"배상은 최후 수단, 차단이 1차 목표"

정부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은행 등 금융사가 일정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에 따른 잘못된 송금을 걸러내지 못한 금융사만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논리가 금융권 전반에 확산하면서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피해 책임을 금융사는 물론 피해자, 통신사 간 어떻게 분담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27일 유동수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피해액은 각각 3만1,681건, 7,000억 원으로 2012년 5,709건, 595억 원에서 크게 늘었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올해 들어 더 확대됐다. 지난 1~7월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피해액은 각각 2만402건, 5,006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76건, 1,051억 원 증가했다.

금융위원회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커지자 지난해 6월 피해자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피해액을 금융사가 일부 배상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금융사의 배상 책임은 보이스피싱 피해 확대 이유 중 하나인 손쉬운 계좌 이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안전장치인 '이상금융거래시스템(FDS)'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데 있다.

FDS는 보이스피싱 송금처럼 고객이 평소에 거래하지 않던 사람에게 이례적인 액수를 보낸 경우 이를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금융위는 FDS를 잘 갖추지 않아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면 금융사에 배상을 물릴 방침이다.

하지만 금융권은 FDS만으로 보이스피싱을 완전히 잡아내지 못하는 만큼 금융사에만 책임을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신사가 보이스피싱의 출발 단계인 대포폰, 발신번호 변작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피해를 낳는 면이 있는 만큼, 통신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정숙 의원실(무소속)에 따르면 올해 1~7월 기준 통신사 3사 중 보이스피싱에 악용된 유·무선 회선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KT(1,058회선)로 나타났다. SK텔레콤은 58개, LG유플러스는 48개였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보이스피싱은 금융사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며 "금융사가 후방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지킨다면 통신사는 사기 행위를 가장 전방에서 막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배상 책임을 얼마나 물을지 여부도 금융위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다. 일단 금융권은 피해자에게 배상 책임을 물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 있는 만큼 피해자도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도 금융권 의견을 반영해 고의 중과실에 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기준을 만들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 방안은 곧 내놓을 계획"이라며 "배상은 최후의 수단이고 보이스피싱을 차단하고 범죄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게 1차 목표"라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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