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티 난민 대규모 유입으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보혁 양측의 공세에 번갈아 부딪히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난민들을 향해 국경수비대가 채찍을 휘두른 사건과 관련, 인권단체들의 거센 비판에 해명을 하고 나니 이제는 멕시코와의 국경 지역이자 보수 진영 텃밭인 텍사스주(州)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 탓인지, 친(親)이민 정책을 앞세우며 자신감에 넘쳤던 정권 출범 초기와 달리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26일(현지시간)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민 정책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은 물론,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도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 침해 논란이 일었던 이른바 '난민 채찍질 사건'과 관련, 국경수비대 대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던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도 날렸다. 애벗 주지사는 "그들(대원들)이 국경 수호 의무를 포기하는 대통령 밑에서 일자리를 잃으면 우리(텍사스주)가 그들을 고용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틀 전 바이든 대통령은 텍사스주 델리오에서 국경순찰대 기마 요원들이 국경을 넘는 아이티 난민들을 채찍으로 위협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언론 및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퍼지자 "끔찍했다. 약속하건대 그 사람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애벗 주지사는 연방정부의 이민 정책 전체에도 반기를 들었다. 그는 "자체 이민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예고까지 했다. 이달 22일 멕시코 국경과 접한 리오그란데강을 따라 수㎞의 '차벽'을 세운 데 이어, 중단된 국경 장벽 건설을 주정부 차원에서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며칠 전까지 인권단체로부터 십자포화를 맞던 바이든 정부가 정반대의 공격에도 처한 형국이다.
'바이든표 이민 정책'의 혼란은 아이티 난민 유입 급증 이후 가속화했다. 친이민 기조를 내세웠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 등으로 곳곳에서 밀려드는 이민자들을 감당하지 못하던 중, 대규모 아이티 난민 행렬은 오히려 국경을 닫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텍사스 국경 지역에 갑자기 들어선 아이티 난민 천막촌을 완전히 철거한 최근 2주간 4,000명이 본국으로 송환됐고 8,000명은 멕시코로 발길을 돌렸다. 이 과정에서 순찰대 채찍 사건까지 발생해 인권단체뿐 아니라, 민주당 일부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었다. 그나마 인권 침해 여론을 달래려 했던 발언이 이번에는 보수 진영의 반(反)난민 기류에 불을 붙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수와 진보, 양쪽의 협공을 당하며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당장 난민촌은 철거됐으나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지난 17일 걸어 잠근 텍사스주 국경 관문을 25일 오후부터 재개했다. 또 다른 거대 이민 집단이 비슷한 임시 정착촌을 세울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대통령 암살과 대지진 등으로 혼돈을 겪는 아이티 실정을 고려하면 탈출 행렬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리엘 앙리 아이티 총리는 25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아이를 가진 부모는 언제나 빈곤과 갈등을 피해 탈출할 것이고, 지구상에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이 공존하는 한 이주는 이어질 것"이라며 불가항력의 현실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