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기자가 본 SNL 인턴기자...풍자인가, 비하인가?

입력
2021.09.26 15:30
'SNL 코리아'의 인턴기자 주현영 묘사에 대한 한국일보 인턴기자 3인의 대화

코미디 쇼 ‘SNL 코리아’가 동영상 서비스(OTT) 쿠팡플레이를 통해 4년 만에 시청자들과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이병헌 하지원 조정석 등 특급 게스트를 내세우며 관심을 끌고 있지만 정작 화제가 된 건 ‘위켄드 업데이트’의 ‘인턴기자 주현영’이었습니다. 다소 과장된 자신감을 드러내는 어색한 말투와 불안한 손동작, 난처한 상황을 회피하려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으로 일부 20대 사회초년생 여성의 특징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현실 고증’이라며 예리한 캐릭터 묘사에 감탄을 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초년생 여성을 비하해 불쾌하다” “사회초년생 여성은 무능하다는 편견을 심어준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조롱하는 것”이라면서 불편해 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특정 세대나 젊은 여성에 대한 비하라기보다는 가벼운 풍자”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인턴기자 주현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나서 털어봤습니다.

단독직집적으로 묻겠습니다. ‘SNL 코리아’ 인턴기자를 보고 기분이 나쁘셨나요?

[최재원·남·26] 아니요. 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채원·여·21] 저는 처음에는 그저 웃겼습니다.

[전세은·여·28] 저는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요?

[전] 영상 후반부에 인턴기자가 울먹거리면서 나가는데, 여성 사회 초년생에 대한 편견이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일부 그런 성향의 사회 초년생에 대한 풍자로 봅니다. 여성 인턴기자만을 내세웠기에 여성 비하라는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고 생각합니다.

[최] 영상을 보며 대학 남성 동기가 먼저 떠올랐어요. 분명 재밌는 영상이긴 하지만 그 친구가 본다면 마냥 웃으면서 볼 것 같진 않아요. 전문가나 기성세대가 바라본 미숙한 신입에 대한 시선이라 느꼈습니다.

[전] 제작진이 특별히 의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전형적으로 떠올려지는 여성 사회초년생의 말투, 표정, 제스처를 쓰다 보니 논란이 생긴 듯해요. 주의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그대로 옮겨왔고, 그것이 최근 높아진 젠더 감수성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듯합니다.

[이] 저도 일부 동의합니다. 여자가 책임을 쉽게 회피하고, 잘 운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그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최] 미숙함을 지나치게 희화화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직업과 성별, 직위가 혼합되어 있는 캐릭터라 각자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직업 비하, 여성 비하, 세대 조롱 등 다양한 논란이 등장한 것도 각자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주현영 인턴기자'와 비슷한 말투, 태도를 지닌 사람을 보신 적이 있나요?

[전] 새내기 시절 대학 동기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발표에서 떨림을 억누르고 또박또박 말하려는 말투에서요. 하지만 회피하거나 울먹거리는 태도를 보였던 사람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저는 대학교 ‘팀플’을 할 때 본 적이 있습니다. 발표를 하던 학생이 누군가가 질문이나 지적을 하면 그것을 감사하다고 짚고 넘어가거나, 질문에 우왕좌왕 대답을 얼버무리기도 했습니다.

[최] 이번 영상이 주목을 받은 점은 주현영의 연기가 뛰어난 점도 있을 겁니다. 특히 대학 조별 발표 때 유사한 상황을 많이 봤어요. 다만 울먹거리거나 뛰쳐나가는 점은 개그를 위해 과장된 듯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투영도 있겠고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본 일이 아닐까요.

[전] 누구나 겪을 만한, 봤을 만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에 대한 비하, 또는 여성은 무능하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고 보십니까?

[최]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현영 인턴기자가 하는 행위 중 눈을 지나치게 크게 뜨려고 한다거나 눈물을 흘리는 모양새를 취한다는 점에선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겨있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남성이 연기를 했으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겠죠.

[전] 전체 여성 비하라기보다는, '여성+낮은 지위(사회초년생, 인턴)는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프레임을 느꼈습니다. 요즘 인턴이라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자리인데, 상사의 지적에 쉽게 포기하고 회피할 것이라는 프레임이 적절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인턴 기자인데, 기자라면 전문성을 갖춘 직업군인데 그것이 ‘여성+인턴’과 결합해 직업의식이 결여된 캐릭터로 형상화되는 점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강력하게 작동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저는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영상을 봤을 때 어떤 부분에서 여성 비하로 볼 수 있는지 납득했어요. 여성이 제대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울면서 책임을 회피해버리는 모습이 일부 여성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인턴기자를 세웠다면 이러한 장면들을 넣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실제로 저희 인턴기자 중에 SNL 인턴기자가 이슈가 되고, 놀림을 받았다는 인턴 동료도 있었어요. 주변 친구들이 "너도 저러냐, 그 대사 해봐, '인턴기자 ***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최] 영상이 주는 메시지가 모호해서 논란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추석 연휴 방역 완화와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에 대해 확실하게 근거를 대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그런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은 듯합니다.

주현영 캐릭터가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최] 해당 영상을 고려했을 때 남자였다면 지나치게 큰 목소리,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꼿꼿하게 편 허리 등으로 표현했을 것 같습니다.

[이] SNL에서 등장한 인턴기자가 남성이었다면, 더 책임감 있고 씩씩한 모습으로 연출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도 어쩌면 제가 가지고 있는 성 고정관념일지도 모르죠. 실제로 우리가 남녀 각각에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는데, SNL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줘 문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이 등장한다면, 마찬가지로 남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을까요.

[전] 남성 버전을 떠올려봤지만 솔직히 한번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저 역시 고정관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고, 연출에 몰입한 창작자 입장이었다면 처음부터 여성 캐릭터로 자연스레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풍자인데 너무 비판적으로 본다는 시각도 있어요.

[최] 연출 의도가 궁금합니다. 당황해서 답변을 제대로 못하는 주현영 기자의 모습을 통해 정부를 비판했다면 풍자겠지만, 사회초년생의 미숙함을 웃음의 소재로 쓴 것이라면 희화화에 지나지 않겠죠.

[이] 제가 며칠 전 20대 대학생들을 상대로 ‘SNL’ 인턴기자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는데요. 여성 비하 논란에 대해서는 응답자 33명 가운데 4명이 여성 비하라고 응답했고, 29명은 여성 비하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세대 조롱 논란에 대해서는 응답자 31명 가운데 9명이 동의했고, 22명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댓글을 봐도 비하보다 풍자로 보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합니다.

[전] 풍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인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했어요.

이러한 코미디가 사회초년생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고 보시나요?

[최]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이 영상이 인기가 많아지는 만큼 여성 사회 초년생에게 '주현영 기자 같다'라는 말로 재생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이러한 코미디가 편견을 보여주고,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끔 한다면 여성에 대한 편견을 완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나 이번 영상과 같이 미숙함이 웃음을 유발하고 대중이 문제의식 없이 소비하는 것에 그친다면(댓글에서 우호적인 반응들. 이게 뭐가 불편하냐는 반응들처럼요)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미디어를 통해 편견과 고정관념이 형성되고 강화되는 만큼 여성 인턴기자나 여성 사회초년생에 대한 편견이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주기자의 미숙한 모습을 강조해서 보여줬는데 점차 성장해나간다면 이러한 논란이 조금 줄어들 수 있을 듯합니다. 또 남성 인턴기자가 등장해서 주기자와 비슷하게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함께 성장해 나간다면, SNL 인턴기자를 더 이상 여성비하로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코미디에 표현의 자유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편견과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계기를 준다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니까요.

[최] 상업용 개그 프로그램에서 완벽하게 정제된 콘텐츠를 요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특정 대상에 대한 확실한 혐오라고 느끼지는 못했고, 이런 담론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개그의 요소로 사용됐다는 것은 시청자들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어떠한 편견의 강화로 이어질 여지는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편견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는 SNL 인턴기자가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젠더 갈등을 비롯해 각종 혐오와 차별,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데 특히 페미니즘이나 젠더 갈등은 과도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SNL 인턴기자가 더 이슈가 되고 논란이 됐고요. 물론 자유롭게 풍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더 많은 소재가 등장해야 하겠지만, 사회 분위기에 맞춰 예민한 소재는 조심해서 다룰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한국은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면서, 매체에 대한 감시 수준도 전보다 강화되고 있는 과도기에 있는 것 같아요. 코미디 역시 현실감 있는 캐릭터가 등장해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기에 편견과 유리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현실성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편견이 담긴 대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대사 자체보다 맥락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이러한 비판을 제작진이 적절히 수용해 성장해나가는 캐릭터를 보여준다든지, 남성 인턴기자도 등장시킨다든지 하면서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될 수도 있을 겁니다. 코미디가 편견을 드러낼 순 있겠지만 대중과의 상호작용이 전제된다면 더욱 적절한 방향이겠죠.

진행정리= 고경석 기자
이채원 인턴기자
전세은 인턴기자
최재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