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무티 리더십’ 16년 만에 떠나는 메르켈… “벌써 그립다”

입력
2021.09.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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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6일 '포스트 메르켈' 정하는 총선 실시
메르켈, 16년간 집권한 동독 출신 첫 여성 총리
포용적·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EU·독일 이끌어
글로벌 금융위기·유로존 사태·난민 사태 등 극복
총선 부동층 40% 달해... '메르켈 부재' 우려 반영

“남자도 총리 할 수 있나요?”

26일(현지시간) 총선이 치러진 독일의 10대 청소년들은 이같이 묻곤 한다. 어릴 때부터 줄곧 앙겔라 메르켈 총리만을 봐 왔기 때문이다. 남성 총리는 되레 생소하다. ‘메르켈 효과’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일화다.

2005년부터 16년간 독일을 이끈 ‘무티(Muttiㆍ엄마)’ 메르켈 총리의 ‘아름다운 퇴장’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새 정부가 꾸려지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공언한 그는 독일 역사상 자발적으로 퇴임하는 첫 총리다. ‘동독 출신 첫 총리’ ‘여성 총리 1호’ ‘최연소 총리’ 등 숱한 기록을 남긴 메르켈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09년 유로존 금융위기 △2015년 난민 사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을 무난하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정치에서는 실용적 정책에 기반해 좌우 구분 없이 정치 지평을 넓혔고, 대외적으로도 유럽연합(EU)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미국·중국 등과의 관계에서 유연한 대처를 보여 줬다는 호평이 주류다. 벌써부터 그의 퇴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달 초 독일 공영 ARD가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75%가 메르켈 시대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동독 출신 여성 과학자에서 총리까지

1954년 서독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르켈은 개신교 목사였던 부친을 따라 동독 브란덴부르크로 이주했다.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일했던 ‘학자 메르켈’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등 격변기에 민주화 운동을 하며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듬해 하원의원에 선출됐고, 헬무트 콜 당시 총리에게 발탁돼 여성청소년부 장관(1991년), 환경부 장관(1994년) 등을 지냈다. 2000년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 대표에 오른 뒤, 2005년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하며 총리직을 꿰찼다. 그리고 2009년과 2013년, 2017년 총선에서 연속 승리하며 ‘4선 총리’가 됐다. AP통신은 “지역, 여성 등의 한계는 오히려 합리적·포용적인 리더십의 기반이 됐다”고 평가했다.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연합(EU) 대장으로

총리 취임 당시 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라 불렸다. 실업률이 11%에 이르는 등 경제 상황도 악화했다. 그런데 메르켈은 전 정권의 경제개혁을 계속 추진하며 독일 경제를 회생시켰다. 기쁨도 잠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유로존 금융위기가 잇따랐다. 특히 그리스 정부의 재정적자로 시작된 유로존 금융위기 당시, 메르켈은 그리스를 상대로 “디폴트 선언 후 구조개혁과 긴축 정책을 실시하라”고 압박했다. 그리스 시민들은 히틀러에 그를 비유했지만, 메르켈은 뚝심 있게 긴축 정책을 폈다. “유로화가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는 말로 EU를 응집시키며 위기 극복에 성공했다.

최대 위기는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였다.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밀려든 난민 100만 명을 수용하기로 하며 거센 반발이 일었다. 여당 지지율은 급락했고, 극우 세력이 부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난민 친화적 입장이 결과적으로 극우의 득세를 불러 왔고, 유럽도 분열시켰다”고 짚었으나, 도이체벨레(DW)는 “포용적 난민 정책이 독일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해 줬다”고 전했다.

외교 정책도 유연했다. 총리 재임 중 메르켈은 미국 대통령 네 명을 마주했다. 프랑스 대통령도 세 번, 영국 총리도 네 차례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행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아프가니스탄 사태 등 현안에서 독일이 안정적 대처를 한 데에는 그의 중재자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특유의 신중함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에도 메르켈은 "냉전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좌우 구분 없이 실용 정책 펼쳐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는 ‘독일 정치의 성숙성’이다. 예컨대 메르켈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2011년,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의 탈원전 의제를 수용해 “2022년까지 탈원전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2010년 모병제 전환, 2014년 연금수령 나이 하향, 2015년 최저임금 법제화 등도 좌우 구분 없는 실용 정책이었다. 특히 2005년과 2013년 사민당과 대연정을 한 데 이어, 2017년 총선 후 “극우세력과 손을 잡을 순 없다”며 사민당과의 연정을 유지한 건 백미였다. 매트 포트러프 영국 코벤트리 대학 교수는 “메르켈 총리는 당리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판을 정책 토론의 장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소탈한 면모도 신뢰를 높였다. 16년간 스캔들이나 부패 사건에 연루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는 남편(요아힘 자우어 베를린 훔볼트대 화학과 교수)과 총리 관저가 아닌 작은 아파트에 산다. 직접 먹을 채소를 기르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2013년부터는 매년 같은 곳에서 휴가를 보낸다.


‘메르켈만 한 총리 없다’…부동층 40% 육박

‘포스트 메르켈’의 특징적 현상은 그의 부재에 대한 우려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부동층 비율은 40%였다. ‘메르켈 후계자’에 어울리는 후보가 없었다는 얘기다. 아르민 라셰트 기민·기사당 연합 총리 후보 지지 연설이 오히려 해당 후보엔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을 정도다. 오스카 니더마이어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메르켈은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이라며 “합동유세는 유권자들에게 라셰트보다 메르켈이 (총리직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앞서 “아직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지 않았지만, 메르켈의 적극성과 실행 능력, 인내심, 경청 능력은 양국 간의 관계와 유럽을 위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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