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약속한 20대 백인 연인이 지난 6월 미국 플로리다주(州)에서 서부로 밴을 타고 캠핑 여행을 떠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약혼자와의 여행 일상을 올리며 행복해하던 여성 가브리엘 개비 페티토(22)는 지난달 말 갑자기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와이오밍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캠핑장 인근에서 목격된 게 마지막이었다.
약혼자인 브라이언 론드리(23)는 지난 1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노스포트 집으로 돌아왔다. 페티토와 연락이 닿지 않자 그의 가족은 같은 달 11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사흘 뒤 론드리가 집에 휴대폰과 지갑을 두고 사라졌고, 19일 티턴카운티에서 페티토가 숨진 채 발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3일 론드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그가 사라진 2만5,000에이커(약 101㎢) 넓이의 칼튼 자연보호구역에서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건의 실체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연인들의 다툼 끝에 여성이 희생됐는지, 제3의 범인이 따로 있는지, 아직 확인된 건 없다. 다만 이번 사안은 여성 대상 범죄 위험성, 백인 여성 실종에 대한 미디어의 과도한 관심, 백인과 다른 인종 실종 사건 대응 편향성 등 다양한 이슈도 미국 사회에서 양산하고 있다.
미 CNN방송은 “모든 여성이 남성들로부터 폭력 위협에 직면하고 있지만, (수사) 당국이 취했던 조치들은 무엇보다 그들의 인종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실종 백인 여성 신드롬’이 문제다. 백인과 유색인종의 사건을 두고 언론이 유독 백인 문제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2004년 공영방송 PBS 흑인 여성 앵커 그웬 아이필이 이 용어를 만들어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 집계 결과 이번에 희생된 페티토도 지난 일주일간 폭스뉴스에 398회, CNN에 346회, MSNBC에 100회나 방송됐을 정도로 언론의 보도 경쟁이 선정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는 백인과 원주민·흑인 여성 간 관심도 차이도 분석했다. 페티토가 숨진 채 발견된 와이오밍에서 2011년부터 10년간 실종된 원주민 소녀와 여성은 400명이 넘는다. 그런데 원주민 여성 희생자의 18%만 언론에 보도됐다. 반면 백인 희생자 중에선 51%가 보도됐다.
흑인 소녀와 여성도 무시되기는 마찬가지다. 국립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실종 신고된 26만8,884명의 소녀와 여성 중 34%인 9만333명이 흑인이었다. 미국 여성 인구 중 흑인은 15%에 불과한데도 실종자 중에서는 그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이다. 물론 흑인 여성 실종사건의 경우 페티토 사건처럼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경우가 드물다.
NPR는 “페티토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다른 인구통계학그룹(인종)의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 같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냉혹한 현실에 주목한다”라고 전했다. 인스타그램 스타였던 ‘미모의 젊은 백인 여성’ 실종 사건만 대중의 관심을 끌게 만들고 평범한 흑인 여성의 죽음과 실종은 묻히게 만드는 언론의 속성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이라고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