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 공작 벽화, 덩굴 장식…루이비통은 왜 151년 된 백화점을 복원했나

입력
2021.09.25 10:00
올해 6월 파리의 사마리텐 백화점 재개장
리모델링 비용 1조 원, 공사기간만 16년
19세기 ‘아르누보’ 건축 양식 고스란히 복원 
일본건축그룹 ‘사나’ 유리 패널 외관 더해
"19세기 백화점 대중화 성과, 21세기엔 명품 전시장으로"

편집자주

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여행이 있습니다. 세계 건축을 통해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살펴봅니다.

올해 6월 프랑스 파리 퐁네프 다리 인근 151년 된 백화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지난 2001년 프랑스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2억2,500만 유로(약 3,125억 원)에 인수한 ‘사마리텐(La Samaritaine)’이다. 사마리텐은 2005년 건물 노후화에 따른 전 문제로 리모델링에 들어가 장장 16년 만에 재개장했다. 무려 7억5,000만 유로(약 1조 원)가 공사 비용으로 투입됐다. 재개장 행사에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획일적인 쇼핑몰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프랑스식 생활방식과 지혜가 빛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마리텐엔 모든 것이 있다’... 현대 상업의 대성당

사마리텐은 1870년 행상이었던 에르네스트 코냑(1839~1928)이 처음 연 양장점이었다. 원래 파리 주요 시설에 물을 대는 펌프장이 있던 자리였다.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유래한 펌프장 이름을 그대로 썼다. 코냑은 프랑스 최초 백화점인 '봉 마르셰' 직원이던 마리 루이 제이(1838~1925)와 결혼했고, 부부는 소매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소규모의 맞춤형으로 제품을 팔던 방식에서 벗어나 대량 생산된 기성품을 판매했다. 부부는 '사마리텐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종류의 대량 생산된 상품을 선보였다. 매장을 구획하고 물품을 사지 않아도 구경하거나 입어볼 수 있게 했다. 제품 가격을 표기하고, 할인 행사도 했다. 현대식 백화점의 시초였다. 당대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는 대량 생산된 물건을 한 자리에서 판매하는 사마리텐을 ‘현대 상업의 대성당’이라고 비유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 부부는 1905년 인근 건물을 사들여 벨기에 건축가 프란츠 주르댕(1847~1935)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을 제안했다. 아르누보는 색과 곡선 등의 형태를 강조하고 다양한 장식을 활용해 심미적인 것이 특징이다. 주르댕은 에펠탑처럼 강철로 건물의 뼈대를 올리고 거대한 유리 지붕을 올렸다. 당시 발코니가 딸린 석조 건축 일색이던 파리에서 매끈한 유리창에 꽃무늬와 글자 등이 장식된 금빛 타일을 붙인 사마리텐은 단연 눈에 띄었다. 내부도 화려했다. 하늘이 훤히 보이는 천창 바로 아래에는 공작과 정원이 그려진 노란 프레스코화가 벽면을 메웠다. 대칭 구조를 이루며 아래로 1층까지 이어지는 중앙 계단과 난간에는 덩굴 장식들이 세밀하게 장식돼 있다.

부부는 1920년대에 세 번째 건물을 사들여 확장했다. 미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실용성을 더하는 ‘아르데코’ 양식을 추구했던 프랑스 건축가 앙리 소바주(1873~1932)가 설계를 맡았다. 꽃무늬나 덩굴 장식은 줄었지만 대칭적인 구조와 곡선 장식 등으로 특징을 드러냈다. 사마리텐은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양식이 적절하게 혼합된 건축물로 거듭났다. 파리시는 사마리텐을 ‘역사적 건축물’로 지정했다.

유리 물결 두르고, 5성급 호텔에서 사회주택까지



사마리텐은 금빛 바탕에 색색의 꽃이 그려진 특유의 외벽과 유리 천장 등 외관뿐 아니라 벽화, 난간 장식 등 내부도 완벽하게 복원됐다. 유리 천창은 전기를 통해 투명도가 조절되는 특수 유리를 사용해 건물 내부의 빛의 양을 조절했고, 1만6,000개의 금박과 세라믹 타일, 270여 그루의 참나무를 동원해 아름답고 웅장한 분위기를 재현해냈다.

달라진 점도 있다. 앞과 뒤가 달라졌다. 센 강을 바라보는 전면부는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을, 상업가를 바라보는 후면부는 최신의 미니멀리즘 양식을 선보인다. 리모델링을 주도한 2010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그룹 ‘사나(SANAA)’는 사마리텐의 북측에 거대한 유리 패널을 붙였다. 유리 패널 343개를 사용해 불규칙한 물결 형태의 외관이 완성됐다. 설계안이 공개됐을 당시 ‘샤워 커튼을 연상시킨다’는 여론과 소송이 이어지면서 공사가 중단될 정도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LVMH 측과 파리시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과 기법이 적용된 문화 예술의 실험장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하며 여론을 설득했다. 장 프랑수아 카베스탕 프랑스 역사건축학자는 “사마리텐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며 “과거의 유산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것을 더해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마리텐의 기능도 확장됐다. 연면적 2만㎡(약 6,050평)의 백화점에는 LVMH의 주요 명품브랜드를 포함해 600여 개의 매장이 입점했다. 나머지 1만5,000㎡에는 5성급 부티크 호텔인 ‘슈발 블랑 파리’부터 갤러리, 스파, 사무실, 96개의 사회주택, 탁아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카베스탕 역사건축학자는 “19세기의 사마리텐이 백화점의 대중화를 선도했다면, 21세기의 사마리텐은 대중화보다는 관광객과 부자들을 위한 고급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복원한 사마리텐은 더 이상 백화점이 아니다”라며 “사마르(Samarㆍ사마리텐의 애칭)는 사마르라고 정의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