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동시 가입 30주년을 맞아, 지난주 유엔총회에 간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을 마치고 방문했을 때는 한반도의 70년 대치 구도가 바뀐다는 큰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한반도에는 어려운 군비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이달 들어 북한은 장거리순항미사일과 열차발사탄도미사일을, 남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했다.
그렇다고 해서, 긍정과 희망을 버릴 이유는 없다. 2018년 평창의 봄으로 시작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어떤 자로 재더라도, 그 의미가 줄지 않는다. 70년 분단을 넘는 작업은 어차피 시간이 걸린다. 오히려 지금이 남북관계의 본질에 맞는 현실적인 접근법을 확인할 좋은 기회다.
돌이켜 보면, 지난 30년간 우리 역대 정부는 한결같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선언으로 시작했다. 진보 정권뿐만 아니다. 보수 정권도 그랬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초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조건 없이 돌려보내고 남북관계의 새 장을 열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경제를 한 단계 올려놓겠다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이 신뢰를 회복하여 러시아 중국 그리고 유럽까지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목표를 이룰 것인가에 가면, 의견이 나뉘었다. 힘으로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과 대화로 풀어내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길게는 70년, 짧게는 30년의 남북관계사를 보면, 압박도 대화도 북한의 반쪽 모습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남북관계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권력의지는 강했다. 통일을 말하지만, 흡수통일이냐 적화통일이냐를 두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남한이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중시한 만큼, 북한은 유일 영도체제를 고수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햇볕이 대포보다 무섭다'고 했다. 위기에 몰려서는 수십만 주민이 굶어 죽는 것도 불사했다. 급기야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나섰고, 남한은 미국과의 동맹을 더 강화했다.
국제정치의 벽은 더 넘기 어려웠다. 남북관계 진전이 이익에 맞지 않을 때는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가차 없이 속도 조절에 나섰다. 2019년 하노이 회담은 그 결정판이었다.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맞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국내 탄핵 위기에 꽂혀 있었고, 일본은 북미관계 진전의 문턱을 높이려고 집요하게 로비했다. 시진핑 주석은 그사이 5번이나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30년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우리 접근법이 현실적 방향에서 자리를 잡는 것 같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한다.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목표는 될 수 없다. 억지력은 유지해야 하며,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핵무기를 만든다'는 말에 흔들릴 일이 아니다. 격화되는 미·중경쟁과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시대착오적 친북, 친미 논쟁을 하고 있을 여유도 없다. 다행히 지금 국방력 강화는 여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SLBM 시험 성공에는 온 국민이 환호했다.
관건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우리는 북한과 달리 5년마다 정권이 바뀐다. 다음 정권의 향방을 미리 정할 수 없으니, 지금 정책이 다음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북한도 지금 마주한 상대에게 모든 것을 걸기를 망설인다. 국내 소통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압박이든 대화든, 정책이 이어지게 하려면, 북한에 쏟는 노력만큼을 국내 다른 의견과 소통하는 데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화와 압박은 배타적이 아니다.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할 정책 수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