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K신파'에 해외선 큰 박수...국내선 '좋아' '싫어' 엇갈려

입력
2021.09.25 12:00
한국에선 흔한 '신파', 외국인에겐 감동 스토리
해외선 SNS 놀이 문화로 확산할 정도로 인기 
국내 4050은 '향수', MZ는 '시대착오적' 온도 차
여성 혐오·약자 차별 논란도…일부선 "보지 말자"

세계의 인기 콘텐츠가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해외에선 온갖 찬사가 쏟아지는 반면, 정작 한국에선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나오기 때문이다.

K콘텐츠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오징어 게임은 일단 전 세계 화제의 키워드가 된 건 분명하다. 한국 드라마 중 처음으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 미국의 톱 10 콘텐츠' 1위, 전 세계 넷플릭스 시리즈 인기 순위 2위(플릭스패트롤 집계)에 올랐다. 미국 외에도 홍콩과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태국에서도 넷플릭스 1위에 올랐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관련 기사 ☞ 456억짜리 목숨 건 도박에 전 세계가 빠졌다)


국내에서도 추석 밥상 메인 요리로 올라왔다. 신작 영화나 방송사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화젯거리였던 이전 명절과는 다른 풍경이다. "주위에서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 하길래 가족들과 같이 보려고 틀었다. 계속 틀어놓기도, 도중에 끄기도 애매하다"란 반응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장식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라 가족끼리 보기에는 불편하다는 걸 재치 있게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외국의 감상평은 엇갈렸다. 외국에선 "엄청난 서스펜션이라 몰입하게 된다", "재밌어서 하루에 아홉 편을 모두 봤다"며 호평이 쏟아진 반면, 한국에선 "자극적이기만 해 괜히 봤다", "시대착오적 작품"이라며 혹평이 줄을 이었다.


20대 일본인 "日데스게임 표절? K드라마 잘 나가니 하는 말"

해외의 반응은 뜨겁다. 미국 뉴욕에서 유학 중인 20대 A씨는 오징어 게임은 현지 친구들 사이에서 빠질 수 없는 얘깃거리라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 미국인 친구들이 '오징어 게임 봤냐'고 많이 물어본다"며 "미국인이 좋아하는 장르라 '정주행(한 번에 전편을 다 몰아봄)했다'는 지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평소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20대 일본인 B씨는 "일본 넷플릭스 순위에서 2위일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나도 친구가 추천해서 보게 됐다"며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수준이 높아 대부분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에서 표절 시비가 붙었던 것처럼 일부 일본인들도 이런 지적을 한다고 B씨는 전했다. 오징어 게임은 등장 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하는 '데스 게임' 장르로, 일본의 '신이 말하는 대로', '도박 묵시록 카이지'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B씨는 "영화 '배틀 게임'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데스 게임 콘텐츠는 대체로 내용이 비슷하지 않냐"며 "한국 드라마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부가 나쁘게 얘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궁화꽃·뽑기·딱지치기, 해외서 주목받는 한국 놀이들

A씨와 B씨가 전한 현지 분위기처럼 외국 SNS에선 오징어 게임은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1020세대가 짧은 영상을 올리며 즐기는 SNS인 틱톡에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영상을 자주 볼 수 있다. 극 초반 첫 번째 게임으로 나오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는 술래인 거대한 로봇이 나온다. 로봇이 뒤를 돌아봤을 때 움직이면 탈락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형 로봇을 합성해 친구들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거나, 술래가 되자 공포에 떠는 표정을 따라 했다. 로봇 코스프레 사진도 자주 올라온다.


드라마 중반에 나오는 '달고나 뽑기' 역시 SNS에서 인기다. 드라마에선 특정 무늬가 찍힌 뽑기 하나와 바늘 한 개가 든 동그란 하늘색 통이 게임 참가자들에게 전달된다. SNS에 올라온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뽑기에 찍힌 모양은 제각각이다. 누리꾼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인기 스타 사진이나 캐릭터를 채워 넣었다. 각국 기업들이 홍보에도 적극 활용 중이다. CGV 베트남지사는 SNS 계정에 CGV 로고가 박힌 뽑기 사진을 올렸다.


눈물 짜내는 신파, 해외선 "나를 울린 스토리" 박수받아

해외에선 드라마의 큰 줄기인 '신파적 요소'에 대해서도 칭찬 일색이다. 흔하게 접할 수 없었던 신파적 요소 덕분에 보통의 데스 게임과는 다른 작품이 나왔다고 평가한다.

주요 등장 인물 대부분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큰돈이 필요한 사연을 갖고 있다. 돈의 목적은 참가자 개인보다 '가족'을 향해 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더는 가족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마지막 도박을 벌인다. 이처럼 등장 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공감했고,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어 흥미를 키웠다는 평가가 많다.


한 평론가는 영상 콘텐츠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 "오징어 게임은 모든 회마다 폭력으로 가득 찼지만, 많은 감정을 갖게 한다. 주요 장면에 나오는 인물들 사연은 나를 무너뜨렸고 눈물을 쏟아냈다"며 "이게 이 쇼의 인기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일반 관객들은 "다른 데스 게임보다 스토리텔링의 깊이가 훨씬 깊다", "두통이 올 정도로 서정적이다", "너무 무섭고 강렬하지만 인물들의 삶은 감정을 요동치게 했다"고 반응했다. 24일 기준으로 오징어 게임은 로튼토마토에서 창의성을 평가하는 신선도 지수는 100%, 일반 관객의 평점인 팝콘 지수는 89%를 받았다.


국내 4050 "추억 떠올라"…무한도전 에피소드도 회자

반면 한국에선 팬과 안티 팬이 반반으로 갈려 기싸움이 벌어졌다. 안티 팬들은 자신이 생각한 문제점을 잇따라 올리는 반면, 오징어 게임을 즐긴 이들은 혹평하는 누리꾼들을 비판했다.

SNS에서 가장 회자된 반응은 '오징어 게임을 대하는 인싸(인사이더, 무리와 잘 어울리고 트렌드에 민감한 부류)와 아싸(아웃사이더, 인사이더의 반대)'다. 인싸들은 '매우 재밌다'라고 짧게 답하는 반면, 아싸들은 '표절이다. 길고 루즈(지루)하지만 한국 드라마치고 괜찮다'며 오징어 게임을 일부러 깎아내린다고 꼬집은 것이다.

일부가 비판하는 건 외국인들과 달리 신파에 대한 식상함이다. 눈물 짜내는 신파는 한국인들에게 흔한 소재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한 이야기이기에 "결말이 너무 뻔하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세대별 온도 차도 뚜렷한 편이다. 어렸을 때 즐겼던 놀이가 대거 등장해 4050세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4050세대는 또 가장으로서 자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아픔에도 많이 공감했다.

40대 후반 직장인 박모씨는 "어렸을 때 했던 놀이가 나와 반가우면서도 충격적이었다"며 "어릴 때 놀면서 말로만 '너 죽었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현이 돼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단어 '깐부'에 주목했다. 두 등장 인물이 "우리는 깐부 사이"라는 말을 하는데, 국내 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이름에 쓰인 깐부가 '어린 시절 새끼손가락 마주 걸어 편을 함께하던 내 팀, 짝궁, 동지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어렸을 때 썼던 그 깐부가 이런 뜻이 있는 줄 이번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도 재조명됐다. 무한도전에서 과거 오징어 게임을 하고 드라마에 나오는 줄다리기를 하는 장면은 SNS에서 밈(Meme·온라인상에서 확산하는 글귀나 이미지)으로 유행하고 있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가 페이스북에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대 "인권 감수성 떨어져"...여혐 논란도

반면 20대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와 탈북자,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낙오자로 표현한 게 불편하다고 지적한다. 20대 C씨는 "인권 감수성이 떨어져 친구들 사이에선 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온다"며 "감독이 2008년에 극본을 썼다고 하는데 높아진 인권 의식을 전혀 업데이트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여성 혐오 논란도 불거졌다. 여성을 학대하거나 폭력에 노출시키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해 눈살을 찌푸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부 커뮤니티에선 '오징어 게임 보이콧' 운동까지 벌어졌다. ①주인공인 성기훈이 이혼한 전처 집에서 윽박지르는 장면 ②성인 남성들이 어린 여성을 집단 폭행하고 ③죽은 여성의 시체를 남성들이 강간했다는 대사 등이 문제가 됐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비유한 부분도 여성 혐오 논란을 키웠다. 드라마 후반부에 얼굴에 가면을 쓴 여성들이 나체로 남성 옆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누리꾼들은 불필요한 장면을 넣었다고 비판했다.

여성을 소외시키는 장면도 평등 사회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러 명이 팀을 구성해 게임을 해야 하는 장면에서 힘이 약한 여성과 팀을 맺지 않으려는 장면도 나온다. C씨는 "아직 안 본 분들은 보지 말 것을 추천한다"고 꼬집었다.



류호 기자
전세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