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형 부동산기업 헝다(恒大·Evergrande) 그룹의 파산 가능성에 출렁였던 세계 증시가 23일 일단 안정을 되찾은 가운데, 엿새 만에 문을 연 국내 증시도 약보합 수준으로 마감했다. 헝다그룹 파산 우려가 추석 연휴 주요국 증시를 강타했던 탓에, 우리 증시로서는 당장 피해야 할 '강풍'은 비켜간 셈이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의 긴축 시계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등 언제든 악재로 평가될 만한 불안 요소는 여전히 금융시장 주변을 드리우고 있다. 당분간 '살얼음판'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0.41% 내린 3,127.58에 마감했다. 코스피는 장 초반 1% 하락한 3,107.98까지 내렸다가 이내 낙폭을 줄였다. 외국인이 나홀로 5,600억 원어치를 사들이며 6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이어간 영향이 컸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도 장 초반 9.6원이나 치솟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외국인 증시자금 유입에 상승폭을 줄이며 전장보다 0.5원 오른 1,175.5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요국 증시도 헝다그룹의 채권 이자 지급 발표와 중국 인민은행의 1,100억 위안(약 20조 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에 안도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뉴욕증시가 0.95~1.02%씩 일제히 상승 마감한 데 이어, 이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0.38% 오르며 3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홍콩 항셍, 대만 자취안 지수 등 중화권 증시도 일제히 1% 안팎 강보합으로 거래를 마쳤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헝다그룹은 이날 장중 18%까지 상승폭을 확대하기도 했다.
헝다 리스크가 다소 진정되면서 우리 금융시장으로선 당장 큰불은 피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헝다 사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오는 11월 테이퍼링 개시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등 긴축 스케줄까지 앞당긴 상태다. 연준은 사실상 제로금리인 현 기준금리(연 0~0.25%) 역시 이르면 내년부터 인상할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처럼 연말까지 미·중 대외변수에 따라 숨죽인 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큰 데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악재로 카카오, 네이버를 비롯한 빅테크 관련주들의 약세가 이어지는 등 내부적으로도 넘어야 할 산도 많은 상태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의 단기 급락은 진정되겠지만 향후 테이퍼링과 중국 정책의 불확실성, 글로벌 경기 모멘텀 둔화 등에 따라 우리 증시는 지수 상승 탄력이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날 보고서에서 "테이퍼링 실시가 기정사실화된 현 시점에 중국 경기 둔화 리스크까지 맞을 경우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단기 충격이 가시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도 이날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는 데다, 중국 헝다 위기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