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상품 저렴하게" "써보고 사세요" 몸집 불리는 재고·체험시장

입력
2021.09.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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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게 비지떡’ 옛말…‘출처’ 중시하는 가성비족
백화점·면세점 재고 늘자 재고·체험시장 급성장
선뜻 구매 힘든 의류·홈파티그릇 단기 렌털多

효용가치는 그대로인데 출시 후 시간이 지나 ‘신제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재고 상품은 제조사뿐 아니라 유통의 마지막 단계인 매장에서도 골칫거리로 통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백화점과 면세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는 재고가 많이 쌓였는데,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이 재고상품의 인기를 높이고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재고시장이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했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재고상품을 온·오프라인에서 유통하는 재고판매숍 리씽크 매출은 2019년 1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4배 가까이 성장한 350억 원으로 뛰었다. 올해 들어선 이달 말까지 약 4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유통업으로 설립 3년 만에 누적 매출 900억 원에 육박하는 고속성장이다.

이 같은 리씽크 돌풍은 그동안 중고나라와 당근마켓, 리셀샵 등 중고시장이 커지며 새 상품에 대한 수요보다 ‘합리적인 소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게 배경으로 풀이된다. 재고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보이자 대기업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 롯데하이마트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마련했고, 롯데는 중고나라에 300억 원 규모의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재고시장의 성장에는 환경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코로나19로 국내외 유통업계가 타격을 입으면서 자연스럽게 재고가 많이 쌓였기 때문이다. 장사가 안 될 때 생기는 재고를 저렴하게 판매하면 기업은 재고를 처리하고, 소비자는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을 공략한 것이다.

재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주효했다. 과거에는 물건이 저렴하면 ‘싼 게 비지떡’이라며 의심부터 했지만 전자상거래(e커머스)를 통해 최저가 상품 찾기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이제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 ‘출처’만 확실하면 품질을 신뢰한다. 리씽크에서는 노트북과 TV 등 ‘신상’ 딱지를 뗀 정보통신(IT)·전자기기와 유통기한 임박상품뿐 아니라 백화점·면세점 및 해외 명품, 홈쇼핑 재고 등 다양한 물품을 취급한다.

“써보고 사세요” 단기 렌털→구매 전환도

선뜻 구매결정을 하기 어려운 상품을 일정 기간 대여해 써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지 판단해볼 수 있는 체험시장도 커지고 있다. 제일기획이 지난해 11월 론칭한 ‘취향발굴 Rent or Buy 플랫폼’ 겟트는 10개월 만에 누적 방문자 90만 명을 돌파했다. 처음에 70여 개였던 입점 매장은 210여 개로 3배 늘었고, 제품 수도 2,300여 개에서 9,000여 개로 확대됐다. 최근 3개월간 월평균 거래액은 초기 3개월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주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옷을 대여해 1, 2주간 코디해보거나, 홈파티 등 일회성 모임을 위해 장만하기에는 부담되는 그릇세트를 빌려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대여한 상품이 마음에 들면 기존 렌털 횟수만큼 할인된 가격에 ‘구매 전환’이 가능하고, 새 제품으로 사도 된다. 겟트 관계자는 “다양한 제품과 브랜드를 1, 2주간 경험해 취향을 찾을 수 있는 단기 렌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중장년이 주요 고객층이던 장기 렌털을 2030세대로 확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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