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반대해온 언론계가 자율규제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언론중재법 개정 찬반을 넘어 언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정의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7개 언론단체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 계획과 함께 언론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는 실천방안을 함께 발표했다.
언론자율규제기구를 통해 인터넷 기사에 대한 팩트체크 등 기사를 심의·평가하고, 그 결과를 해당 언론사에 알려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게 핵심이다. 허위정보를 담고 있거나 언론 윤리를 위반한 인터넷 기사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언론사에 인터넷 기사 열람 차단도 청구하게 된다. 아울러 인터넷 기사나 광고로 인한 피해자가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 가지 않더라도 신속하게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안도 찾기로 했다. 김수정 한국여기자협회장은 "언론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3, 4번의 꼼꼼한 언론사 내부 데스킹을 거치고 팩트체킹해서 내보내는 기사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렇지 않은 기사가 나왔을 때 우리 스스로 찾아내서 제대로 알리는 토대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자율규제기구의 역할과 기능, 자율 규제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학계·언론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을 조속히 꾸려 마련할 방침이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자율규제 시도를 이미 실패한 것으로 규정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우리는 실효성 있는 자율규제기구를 만들자는 데 합의했고, 그런 뜻을 (사업자 단체까지) 한자리에 모았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자율규제기구에 현업 언론인(노동자)뿐 아니라 사용자 단체까지 참여하는 건 이례적이다. 강홍준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은 "신문협회가 나선 이유는 기존 자율규제 기구들이 원하는 수준만큼의 실효성 있는 규제를 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 자율규제 기구는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기사에 대한 상시 심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언론자율규제기구는 향후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등까지 참여 단체를 확대할 계획이다. 지상파 방송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방송협회는 내부 의견을 모으고 있고, 언론계는 다음 주 열리는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서 포털의 참여를 공식 요청할 예정이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우리 스스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저널리즘 품질과 신뢰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인식으로 자율규제기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론 자율규제기구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 같은) 국가 규제기구를 대체해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처리되더라도 통합 자율규제기구의 논의는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 "현행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골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악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개정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이른바 '가짜뉴스'의 문제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 나타나는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정부가 '가짜뉴스'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징벌적으로 처벌하겠다는 나라는 전 세계 민주국가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제언론인협회(IPI)는 지난 15~1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총회를 열고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된 결의문을 채택했다. IPI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결의문을 통해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파키스탄의 PMDA 법안을 포함한) 저널리즘을 방해하는 몇몇 새로운 법적 규제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두 조치 모두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