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벚꽃 텀블러'가 나왔을 때부터 모으기 시작했어요. 제품이 출시되면 일상용, 수집용으로 2개씩 사요. 주변에도 자주 선물하고요. 이유요? 당연히 환경 때문이죠."
오모(32)씨는 6년간 350개가 넘는 텀블러와 리유저블 컵(다회용 플라스틱 컵)을 모았다. 대부분 스타벅스에서 한정판 기획상품(MD)으로 출시한 것이다. 반년에 한 개씩 써도 평생 소진하지 못할 만큼 컵이 쌓였지만 오씨는 "환경을 위한 구매"라고 강조했다. 판매사가 표방하는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는 소비 활동이란 얘기다.
커피 전문점을 중심으로 여러 번 쓸 수 있는 용기를 판매 또는 증정하는 '친환경 마케팅'이 활발하지만, 그런 제품이 과도하게 양산되면서 되레 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해당 제품이 실제 사용보다는 수집이나 중고 거래에 대거 쓰이고, 이런 경향을 '한정판 제품' '착한 소비'를 내세우는 상술이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요즘 회자되는 용어인 '그린워싱(greenwashing·거짓 환경주의)'의 대표 사례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린워싱은 녹색(green)과 세탁(whitewashing)을 합친 조어로, 환경 보호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환경에 피해를 주는 일을 뜻한다.
23일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커피전문점들은 앞다퉈 친환경 MD 마케팅을 확대하는 추세다. 분기별로 세련된 디자인의 텀블러를 출시하거나, 일정 기간 리유저블 컵 증정 행사를 진행하는 식이다.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 컵 등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품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이에 호응한 다회용 컵 수요층이 두터워지면서 구매 이유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제품 종류가 확대되면서 디자인 경쟁이 치열해지고 각 사 고유의 브랜드 가치가 덧입혀지면서, 이들 제품을 수집이나 장식 용도로 구입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이렇게 구입되면 '친환경 용기'라는 본래 목적에 쓰일 가능성이 낮은 게 현실이다.
'수집가'들이 늘어나면서 다회용 컵을 대량 구매한 뒤 웃돈을 붙여 되파는 일도 성행하고 있다. 공격적인 MD 마케팅으로 유명한 스타벅스는 지난달 3일부터 23일까지 특정 음료를 구매하면 리유저블 컵에 담아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한정판을 강조한 마케팅에 컵은 여러 매장에서 금세 품절됐지만, 당시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해당 제품을 여러 개 보유한 판매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오씨도 "일부 제품은 온라인에서 원가의 2~3배 가격에 구매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회용 컵은 하나만 구매해 오래 사용해야 친환경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캐나다의 환경보호·재활용 단체 CIRAIG는 "플라스틱 텀블러는 50회 이상,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220회 이상 사용해야 의미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 따르면 텀블러와 리유저블 컵 생산 단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은 종이컵 대비 각각 24배, 2배에 달한다. 다회용 컵을 몇 번 쓰고 버릴 바에야 매번 종이컵을 사용하는 게 더 이로운 셈이다. 스타벅스는 리유저블 컵 사용 횟수를 20회로 권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다회용 컵 마케팅이 과소비를 부추겨 환경 보호에 역행하는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친환경 다회용기라면 알루미늄이나 종이로 만들어도 될 텐데 계속 플라스틱을 쓰고 있다”며 “(다회용 컵 판촉 행사가) 그린워싱으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신우용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커피전문점들이 다회용 컵을 만들어 팔기보다는, 고객이 개인 컵을 가져오면 음료 가격을 할인해주는 방식을 보다 적극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