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킬러 로봇으로 이란 최고 핵과학자 살해

입력
2021.09.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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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센 파크리자데, 지난해 11월27일 의문의 총격 사망
NYT "총격 배후 이스라엘 모사드의 킬러 로봇"
요원 투입 없이 장거리에서 원격 조정으로 정밀 타격
"모사드의 첩보 셈법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지난해 11월 인공지능(AI)이 부착된 원격 조정 로봇을 이용해 이란 최고의 핵과학자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첨단 기술이 적국의 암살 공작에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7일 테헤란 동부 인근 도시 압사르에서 이란 핵과학자인 모센 파크리자데를 향해 기관총 공격을 한 것은 그의 얼굴을 인식해 정밀 타격한 인공지능(AI) 로봇이었다고 전했다.

‘이란 핵개발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크리자데는 이란 국방부 연구ㆍ혁신기구(SPND) 책임자(차관)로 근무하면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이란이 진행한 핵무기 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이란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파크리자데의 자산을 동결하기도 했다.

암살 당일 파크리자데는 부인과 함께 카스피해 인근 별장에서 압사르의 시골집으로 자신의 검은색 닛산 세단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14년간 암살 위협에 시달려왔던 그는 이날 이란 정보국의 암살 가능성 경고에도 경호원들의 무장차량 대신 직접 차를 몰았다. 이는 보안규정 위반이었지만, 평소 이를 부담스럽게 여겼던 그는 비무장한 자신의 차량을 택했다. 대신 그의 차 앞뒤로 4~7대의 경호차량이 따라붙었다.

오후 3시 30분께 그의 차가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압사르의 길로 들어서자 길가에 서 있던 파란색 닛산 트럭에서 총격이 시작됐다. 공격에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고, 총탄 15발이 발사됐다. 이중 3발 이상이 파크리자데를 정확히 겨냥했고, 파크리자데는 인근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목숨을 잃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그의 부인은 살았다.

당시 범인이나 살해 배후 등이 알려지지 않은 채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길가 폐쇄회로(CC)TV 등도 모두 멈춰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고 현장에 있던 트럭에 적재된 방수포와 건축 자재 사이에 7.62㎜구경 저격용 기관총이 달린 원격 제어 로봇이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이 로봇은 1,609㎞가량(1,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원격으로 조정됐으며, 파크리자데의 얼굴을 정확하게 인식해 조준 사격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NYT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무게가 약 1톤에 이르는 기관총과 로봇, 부속품 등을 작은 부품으로 분해해 이란으로 밀반입한 뒤 비밀리에 재조립했다”며 “과거 테러 방식과 달리 요원 투입 없이 최첨단 기술로만 표적을 암살했다”고 전했다. 트럭은 임무 수행 후 자동 폭파됐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란의 핵 관련 주요 인물 암살을 모의해왔다. 지난 2010~2012년에는 이란 핵과학자 4명이 자동차에 부착된 폭탄 공격이나 괴한의 총격 등으로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NYT는 “과거에는 요원을 안전하게 구출하기 위한 계획이 필수였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라며 “킬러 로봇의 등장은 모사드의 첩보 셈법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전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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