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은 친하다는 뜻의 ‘친가’(親家), 어머니 집은 바깥 의미의 ‘외가’(外家)라는 게 말이 됩니까.”
김선희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위원(경기양성평등센터장)은 18일 “일상 속 무심코 쓰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친가와 처가를 대표적인 성차별 용어로 꼽았다. 남편의 집안은 높여 부르는 ‘시댁(媤宅)’, 아내의 집안은 집이라는 뜻의 ‘처가(妻家)’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년 전부터 이런 차별적 호칭을 고쳐 부르자는 사회적 요구가 이어졌지만, 실생활에서 크게 개선되지 않으면서 기혼 여성은 명절 차례 상 차리기에 더해 이중의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외가는 기혼 여성이 출가외인이라는 인식에 따라 만들어진 용어로, 가깝다는 뜻의 친가와 달리 멀게 느껴지게 한다”며 “가족, 친지들이 모이는 한가위에 가족 간 호칭을 바꾸어보자”고 제안했다. 시댁과 처가는 시가와 처가로, 친할머니, 외할머니는 살고 있는 동네, 지역 이름을 붙여 부산 할머니, 삼청동 할아버지 처럼 부르자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새로운 언어예절 안내서에도 제안된 내용이다.
그는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자주 쓰는 가족 간 호칭이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내의 부모는 어른을 뜻하는 장인과 장모로 부르는데, 이제는 시댁 부모와 마찬가지로 어머니, 아버지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의 동생은 조선시대 종이 상전을 높이던 아가씨와 도련님 등으로 부르는데, 오빠의 아내는 오라비의 계집에서 유래된 올케라고 부르는 것도 대표적인 성차별 호칭으로 꼽았다. 남편의 동생이 결혼하면 나이가 어려도 극존칭이 붙어 '서방님'이 된다. 반면 부인 동생은 처남·처제로 낮춰 부르는데, 이 모든 게 남성 중심의 가족호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호칭 대신 앞에 이름을 붙여 ~씨나, 00의 엄마, 아빠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아들의 아내를 이르는 며느리는 아예 어원이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호칭이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외국인 결혼 이민자들도 복잡한 호칭 때문에 한국어를 익히는 데 애를 먹고 있고, 뜻을 알면 놀라워 한다”며 “남존여비 사상을 드러내는 성차별적인 호칭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일상 생활 중 흔히 쓰는 말 중에도 성차별적 용어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편을 따라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의 ‘미망인(未亡人)’,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집사람’ 등이 그렇다. 그는 이외에도 “경력단절여성은 고용단절여성 또는 경력보유여성으로, ‘집사람, 안사람’은 배우자로 바꿔 사용해야 한다”며 “운전이 미숙한 여성을 가리키는 ‘김여사’란 말도 남성을 일컫는 용어는 없기에 여성비하적 발언이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임신, 출산만을 다루는 의미의 ‘산부인과’, 돌봄을 여성의 영역으로 본 ‘유모차’ 등도 여성의학과, 유아차 등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도 차별 용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의 성인지감수성 수준이 낮다는 증거”라며 “성평등 인식을 담아 성적 불쾌감 등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불평등한 호칭을 바꾸자며 기준까지 마련했지만, 실생활에서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성차별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사회 전반에 성평등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데, 성평등 의식 향상을 위한 다양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