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DLF 판결' 장고 끝 항소…미로에 빠진 '손태승 중징계'

입력
2021.09.17 16:00
금감원 "법원 추가 판단 필요해 항소 결정"
손태승 최종 징계권자 금융위 선택도 주목

금융감독원이 17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취소하라는 법원의 1심 판결에 불복, 항소를 결정했다. 금감원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제재 권한 인정' 등 유리한 1심 판결을 바탕으로 뒤집기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금융권은 이번 항소로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고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데드라인 직전 항소 결정…해볼 만한 싸움 판단

금감원은 이날 손 회장이 제기한 징계 취소 소송과 관련, 1심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한다고 밝혔다. 앞서 손 회장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판매 과정에서 내부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고객의 피해를 낳았다는 이유로 금감원이 중징계를 내리자 행정 소송을 걸었다. 지난달 27일 서울행정법원은 금감원의 중징계는 재량권 일탈이라면서 손 회장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이 항소 결정 데드라인인 이날 직전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항소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연이은 패소 우려,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의 시장 친화적 발언, 최종 징계권을 쥔 금융위원회 내 부정적 기류 등을 이유로 '이쯤에서 접자'는 분위기도 일부 있어서다.

금감원은 장고 끝에 항소를 결정했다.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손 회장 중징계 사유인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5건 중 1건만 인정한 1심 결과를 2심에서 더 다툴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1심 재판부가 손 회장에게도 내부통제 부실의 책임을 묻고, 금감원이 금융사 CEO를 제재할 수 있다는 권한 역시 인정한 만큼 2심 승소 가능성은 높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금감원은 1심 재판만으로 손 회장에 대한 징계가 잘못됐다고 인정하기엔 너무 섣부르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금감원이 1심에서 물러섰다면 중징계를 주도한 내부 직원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감사원 감사 등으로 문책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이 1심 인정 시 당장 손 회장과 비슷한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과의 법적 분쟁도 더 진행할 명분을 잃게 된다.

박지선 금감원 공보국장은 "개별 처분 사유에 대해 법원의 추가적 판단을 받고, 비슷한 사유로 하나은행과 진행 중인 재판도 고려해 항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손태승 최종 징계권 쥔 금융위 고민도 깊어져

금융권은 손 회장과 비슷한 건으로 징계를 받은 다수의 은행·증권사 CEO가 있는 상황에서 이번 항소는 불확실성을 더욱 키웠다고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항소를 포기했다면 금융사 CEO 징계 수위도 떨어져 DLF, 사모펀드에서 비롯된 제재 국면은 마무리됐을 것"이라며 "이번 항소로 특히 중징계를 받은 회사는 대응 방향을 놓고 골치 아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 회장 징계를 최종 결정해야 하는 금융위의 고민 역시 깊어질 전망이다. 금융위가 앞서 1심 재판 결과를 보고 손 회장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이 항소를 최종 결정하면서 금융위가 징계 수위를 서둘러 확정하기는 어렵게 됐다.

만약 1심 결과를 반영하면 손 회장 징계는 경감이 불가피한데 이 경우 금감원 항소를 뒤집는 꼴이다. 2심 판결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오래 걸려 부담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체적 제재 방향은 금융위, 금감원이 협의해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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