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정전협정은 쌍방 간 적대행위 중지, 전쟁 재발 방지, 무력충돌의 평화적 해결방식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당시 전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이 확정됐고, 남북 각 2㎞ 폭의 비무장지대가 설정됐다. 그러나 지난 60여 년 동안 정전협정 취지가 무색할 만큼 남북 간 무력충돌이 빈번했다.
올해 초 발간된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 침투·국지 도발 사례는 정전협정 이후 총 3,120건에 달한다. 1990년대 250건, 2000년대 241건 등 연평균 20건 이상이다. 2010년 이후에도 2017년까지 264건의 크고 작은 도발이 이어졌다. 특히 2016∼2017년 북한은 3차례의 핵실험, 40여 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당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코피 전략’까지 꺼내 들며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선 한반도 전쟁 위기설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했다.
반전이 2018년 이뤄졌다. 2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9·19 군사합의가 체결됐다. 지상·해상·공중에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DMZ를 평화지대화하는 등 정전협정의 기본정신에 부합하는 군사적 조치를 담고 있다. 군사합의는 태생적으로 정전체제를 계승하면서도 미래의 평화를 지향하는 실효적인 군사합의이다.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단 1건도 없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정전협정만으로는 불안했던 한반도 평화에 군사합의라는 또 다른 버팀목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렇듯 2개의 버팀목이 상호보완적으로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는 공고해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9·19 군사합의에 대해 자발적 무장해제라고 비난한다. 심지어 안보 포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한반도가 군사합의 체결 이전보다 더 위태로운 안보상황에 직면해 있어야 한다. 2018년 이전과 현재를 비교한다면 언제가 더 위태로운가? 대립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는 권총을 포함한 모든 무기가 사라졌고, 연평해전과 천안함사건 등 군사적 충돌이 빈번했던 해역은 완충구역을 설정해 충돌 가능성을 없앴다.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9·19 군사합의가 냉전의 마지막 유산을 끝내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마중물이자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사합의는 믿고 지지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독일 통일을 달성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神)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전략가의 책무"라고 했다. 전쟁 재발 위기에서 급반전을 이루어낸 2018년의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 과거 역사를 반복한다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 9·19 군사합의 체결 3년이 된 지금, 다시 군사합의 이행의 불씨를 지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