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자주 놀아요? 당신 부자네요!

입력
2021.09.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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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5년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비루한 현실보다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가상현실인 '오아시스'에서 시간을 보낸다. 온라인 접속을 끊으면 춥고 좁은 현실 세계의 집으로 돌아온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 가는 요즘, 이 설정을 재미있자고 하는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가난할수록 온라인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설정, 과연 영화 속 이야기이기만 할까?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의 취미 생활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수영·요가·농구·스쿼시 같은 운동을 즐기던 사람들도 혼자 집에서 할 수 있는 홈트나 트레이너가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 PT를 선택한다. 집에서 하는 여가생활을 공유하는 ‘집콕 챌린지’가 유행하고, 취미 재료를 집으로 배송시켜 이용할 수 있는 ‘취미 키트’도 인기다.

취미, 일, 공부, 모임, 자기계발까지 비대면으로 바뀌는 시대, 물론 장점도 많다. 온라인 활용이 능숙하고 사람들과 직접적인 대면을 선호하지 않는 청년 세대는 이 변화에 금방 적응하는 듯 보인다. 도심으로만 몰렸던 질 좋은 교육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공개되고, BTS 콘서트도 방구석 1열에서 볼 수 있다니!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도 콘텐츠의 접근성이나 네트워킹의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게 달갑지만은 않다. 사회적 배리어를 낮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회를 차단당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가 머물 수 있는 오프라인 야외 공간이 줄어들었다. 공공체육시설은 문을 닫았고, 공원 의자마다 앉지 말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노인들은 탑골공원이 문을 닫았다는 걸 알면서도 공원 근처를 서성인다.

공공시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으려면 집이나 정원이 넓거나, 넓은 공간을 소수가 임대할 만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안전을 위해 사회적 거리가 확보되는 공간을 누리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이들은 좁은 실내에서 게임기로 운동을 한다. 층간 소음을 내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증이 많아진다. 건강에 적신호가 뜬다.

이런 간극을 메꿔주는 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소득과 상관없이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을 운영하고, 안전하게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주는 것. 코로나를 탓하며 모든 활동을 온라인으로 돌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최근 서울 지역 기초자치단체에서 개최한 온라인 행사는 수십 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들어간 행사의 조회수는 기껏해야 천 개다. 상품을 나눠주고, 인플루언서를 불러보지만 참여자는 많지 않다. 코로나로 시대는 변했는데, 행사와 축제라는 형식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 탓이다.

온라인 공간이 열렸다고 해서, 오프라인 공간을 포기해도 되는 건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공공의 공간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함께 살 수밖에 없다면, 시민 누구나 안전하게 야외 공간을 누릴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이 소수에게만 허락된다면 아무리 넓은 온라인 공간이 다수에게 허락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평등하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