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ADHD 앓고 있다"… 질병 존재를 알리는 여성들

입력
2021.09.25 14:00
10면
책, 영화 등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
"많이 알려야 여성 환자 연구도 늘 것"

"여성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다룬 연구자들의 책을 보면 서문에서 본인 역시 같은 병을 앓고 있음을 고백하더라고요. 유쾌하고 멋져 보였어요."

임상심리학자 신지수(31)씨는 최근 펴낸 책(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휴머니스트)을 통해 자신이 ADHD임을 세상에 알렸다. 신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에서 부담감도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실체로서의 여성 ADHD 환자를 보이고, 정신 장애와 심리학에서의 젠더 편향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라고 밝혔다.

신씨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2019년 겨울, 아무도 없는 빈 검사실에서 동료들 몰래 ADHD 검사를 진행했다. 병원에서 아동 ADHD 환자를 만날 때마다 '다들 이러고 살지 않나'라는 의문이 계속 떠올라서다.

ADHD 진단을 받고, 성인이 될 때까지 왜 이를 의심하지 못했는지를 되짚던 그는 '여성'이라는 자신의 성별에서 원인을 찾았다. "여성 ADHD가 가시화되지 않다 보니 쉽게 의심하지 못할뿐더러 증상을 가진 여성들은 혼자 속이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는 것.

그는 ADHD 자체가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문제행동 때문에 장애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여성은 상대적으로 소외당한 문제에 주목했다. 신씨는 "성인 ADHD의 경우 논의된 역사가 길지 않아 진단 척도가 아예 '백인 성인 남성'에 맞춰져 있다"고 했다.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약물 개발 과정에서도 일반적으로 남성을 표준으로 삼기 때문에 ADHD도 여성은 신체에 비해 고용량을 복용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 그럼에도 개선의 노력은 부족하다. 그는 "여성 ADHD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도 학계가 아니라 성인이 된 여성 환자들이 정신과로 제 발로 찾아가면서 뒤늦게 연구가 이뤄졌다"고 했다.

그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여성 ADHD를 부각하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여성 ADHD 다큐멘터리 영화 '산만한 소녀'를 준비하는 박보네(28) 감독 역시 신씨와 비슷한 시기에 자신이 ADHD임을 알게 됐다. 박 감독은 "ADHD 진단 후 잠을 정말 잘 자게 되면서 그간 불면의 시간이 아까워 의사에게 하소연했더니 '20대에 병을 알게 된 건 빠른 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라고 했다. 대부분의 여성은 더 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었다.

여성 환자의 존재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탓이라는 생각에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그는 "충분한 서사가 쌓여 담론이 만들어지고 여성을 동등한 비율로 참여시키는 연구가 늘어날 때까지 ‘여성 ADHD’에 대한 발화는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재는 알리되 무거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ADHD를 '반드시 이겨내야 할 병'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신씨는 "물론 ADHD는 하나의 결점이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다양한 결핍을 갖고 분투하고 있다"면서 "병의 이름이 있고, 이를 연구·개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는 행운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을 쓴 정지음(29)씨는 엉뚱하지만 기발한 생각으로 자신의 투병기를 썼다. 정씨는 "ADHD가 내 인생을 망쳤으면 보상을 해야 하지 않나, 병으로부터 받을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밝게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한두 명이 내가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약점일 수 있겠지만 모두가 알아버리면 더는 비밀도 아니고 약점도 아니게 되지 않을까요."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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