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의 추락세가 예사롭지 않다. 주유소 간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데다, 전기차 등을 포함한 친환경차의 보급 확산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어서다. 지난 명절만 해도 귀향길을 지켰던 주유소가 다가올 추석엔 개점 휴업 상태로 남겨졌을 가능성도 적지 않단 얘기다.
16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11년 말까지 1만2,901곳이던 주유소 영업장 수는 2020년 말 1만1,399곳으로 무려 1,500곳 이상이 줄었다. 10년이 채 흐르지 않은 시간 동안 약 12%의 주유소가 문을 닫은 셈이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2010년까진 주유소가 1만3,003곳이 영업했지만, 이후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도입하는 등 주유소 간 경쟁을 통한 유가 인하 정책이 시행되면서 주유소는 연평균 150곳씩 문을 닫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로 개편에 따른 옛 도로변 주유소들의 고사도 영업장 감소 요인 가운데 하나다.
대형 주유소 ‘수익 쏠림’ 현상도 뚜렷하다. 2019년 통계청 조사 결과, 매출액 상위 50%의 매출액이 40조1,575억 원으로, 전체 매출액 47조3,704억 원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매출액 하위 50%의 매출액은 7조2,128억 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15%에 불과하다. 특히 연 매출액 10억 원 이하 구간의 주유소(1,455개)의 연평균 영업이익은 1,100만 원. 이를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95만 원으로 사장의 인건비조차 보장되지 못한 경영환경이란 게 주유소협회 분석이다.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 정책에 따른 경쟁력 저하는 주유소 업계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전기·수소·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 차량 보급 대수는 2019년 58만3,000대에서 지난해 79만6,000대로, 한 해 만에 36% 급증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속도가 붙으면서 주유소 업계의 위기도 더해지고 있다. 실제 전국 주유소의 유류 판매량도 급락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주유소 판매량은 3,686만6,426킬로리터(㎘)로 전년도 같은 기간 3,765만8,684㎘ 대비 2.10% 줄었다.
문제는 주유소 경영 사정이 어려워도 ‘폐업’이 쉽지 않단 점이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주유소가 폐업을 하려면 다른 업종과 달리 건물 철거 및 토양오염 복원을 위해 1억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든다”며 “서울이나 수도권은 입지가 좋아 비용이 들더라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지방 주유소는 여건이 좋지 않아 폐업보다 휴업을 택한 채 주유소를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영세 주유소에 대한 정부 차원의 폐업 또는 사업 다변화 지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이와는 별도로 다양한 자구책도 찾고 있다. 주유소 내 유휴 공간을 물류센터로 활용하거나 전기차 충전소를 마련하면서 돌파구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올해 초 열렸던 소비자가전박람회 'CES 2021’에서, 주유소 부지를 물류 허브로 두고 무인항공기(드론)로 상품을 배송하는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도 배송업계와 손잡고 유휴 주유소 공간을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아예 알뜰주유소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해 ‘복합스테이션’으로 바꾸고 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전기차 등 미래 수송 차량 에너지 공급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 석유제품 유통시장 개선에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