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빈 뉴섬(민주당)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당초 예상과 같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뉴섬 주지사는 14일(현지시간) 치러진 주민소환 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소환 반대’ 결과를 얻어 지사직을 계속 유지하게 됐다. 민주당 텃밭에서 승산 없는 싸움에 매달린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서부 태평양 표준시 기준 이날 오후 10시까지 개표된 800만 표 중 66%가 ‘뉴섬 주지사가 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2018년 주지사 당선 당시 득표율 62%보다도 높은 ‘압도적 지지’다. AP통신도 투표 종료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뉴섬 주지사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뉴섬 주지사는 주도 새크라멘토에서 “수백 만 명의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소환 ‘반대(No)’ 표가 압도적으로 나왔으나, ‘반대’는 한 가지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는 과학과 백신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에 ‘네(Yes)’라고 답한 것이다. 유권자들이 억압당할 두려움 없이 투표할 권리, 여성들이 신체·신앙·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 그리고 다양성에 동의했다”고 평했다.
뉴섬 주지사는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자택 대피령과 실직, 학교 폐쇄 등으로 일상생활의 혼란을 겪고 정상적 삶을 영위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주민투표에 회부됐다. 지난해 11월 고급 레스토랑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로비스트들과 식사한 것이 폭로되면서 불거진 ‘내로남불’ 논란도 일부 주민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하지만 뉴섬 주지사는 최근 캘리포니아주가 미 전역에서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고 신규 감염률은 가장 낮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적극적 백신 접종 정책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 덕분”이라고 맞섰다. NYT는 “주민소환 투표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정치화였다”며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감염병보다 시급한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이번 투표는 내년 중간선거의 ‘전초전’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주민 60%가 주지사 소환에 반대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주지사 지지 여론이 그다지 뜨겁지도 않았던 터라, 민심 향방을 가늠할 시험대로 여겨졌다. 하지만 막상 투표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여지없이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
캘리포니아주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민주당원 수가 공화당원보다 두 배나 많다. 또 감염 예방을 위해 우편 투표를 시행, 주민 40%가 사전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사전 투표율이 높을수록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건 지난해 11월 대선 때도 입증된 사실이다. 당 차원에서도 텃밭 사수에 총력을 다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직접 방문해 지원 유세를 펼쳤고, 무소속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홍보 영상에 출연했다. 기부금도 7,000만 달러(약 818억 원)나 쏟아졌다.
민주당 인기만 재확인한 이번 투표로 공화당은 거센 역풍에 휩싸였다. 주민소환 투표 청원을 조직한 공화당은 “청원인 150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 자체로 역사적 성취”라고 자평했으나, 중대한 정치적 오판이었다는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전략가 마이크 마드리드는 래리 엘더 공화당 주지사 후보가 투표 종료 전부터 ‘선거 조작’을 주장하고 나선 점을 거론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판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공화당의 패배는 관에 또 다른 대못을 박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번 주민소환 투표는 공화당이 점점 과격해지면서 지지 기반이 크게 움츠러들었다는 걸 보여 준다”고 진단했다.
민주당도 마냥 기뻐할 처지인 건 아니다. 텃밭에서 주민소환 투표가 성사됐다는 사실 자체가 민주당의 위기를 시사한다. 민주당 전략가 대리 스라고는 “이번 투표는 ‘탄광 속 카나리아’였다”며 “소득 격차, 주택 부족, 기후 위기 등이 해결될 때까지 권력자들은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