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秋夕)은 중추(仲秋)와 월석(月夕)의 축약형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추석 무렵을 중추 또는 월석이라 했다. 그 기원은 유교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기록된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이다. '봄에는 아침 햇살이 좋고, 가을에는 저녁 달빛이 좋다'란 뜻이다.
동아시아에서는 1년을 기후의 변화에 따라 봄·여름·가을·겨울 등으로 나눈 것을 계(季)라고 불렀다. 사계(四季)의 한 계를 다시 석 달로 구분한 것이 계절(季節)이다. 여기서 절(節)은 입춘, 입하, 입추, 입동(春夏秋冬) 등 24절기를 말한다.
또 한 달은 월초의 절기(節氣)와 월말의 중기(中氣)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일 년은 12절기와 12개의 중기로 모두 24절기로 이뤄진다. 1기(氣)는 다시 초후(初候), 이후(二候), 삼후(三候) 등으로 구분했다. 날씨와 관련된 기후(氣候)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1후는 5일이고 3후, 즉 절기와 중기 사이는 약 15일이다. 사극에서 나오는 '문후(問候)를 드린다'는 인사말은 최근 닷새간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서양은 7일 단위로 생활했으나 동양은 24절기를 기준으로 15일을 한 주기로 삼았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은 달을 중심으로 한 음력(陰曆)을, 농사는 절대적인 태양력(太陽曆)인 24절기를 사용했다. 설·추석 등 명절은 음력으로 매년 날짜가 변하지만, 입춘·동지 등 24절기는 매해 같은 날짜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주(四柱)에서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는 24절기가 기준이다.
추석의 또 다른 명칭인 중추절(仲秋節)은 '가을의 중간'이란 말이다. 가을인 경우, 첫 달을 맹추(孟秋), 둘째 달을 중추(仲秋), 마지막 달을 계추(季秋)라 불렀다. 다른 계절도 마찬가지다. 이름에 맹(孟)자가 있으면 갑(甲)과 같이 자식 중 첫째라는 의미다. 각각의 달에도 별도의 명칭을 붙였다. 음력 8월은 가을 달빛이 좋다는 뜻의 계월(桂月) 또는 소월(素月)로, 9월은 국화가 피는 달이라 국월(菊月)로 부르기도 했다.
설이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날이라면, 추석은 가을에 얻은 수확물에 감사하는 날이다.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신라 수로왕 능묘에 정월 3일과 7일, 5월 5일, 8월 5일과 15일에 맑고 깨끗한 제물을 올려 제사를 지냈는데 그것이 훗날 설과 단오, 추석 등의 기원이 됐다"고 설명한다.
고대에는 추수기인 이 무렵이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을 것이다. 따라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모여 조상에 감사드리고 잔치를 벌였다. 일종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농경 사회에서는 어느 문화나 존재하는 축제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진심으로 바라던 바였다.
추석의 또 다른 이름인 '한가위'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가 합쳐져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말이다. 가위는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嘉俳)'에서 유래됐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3대 유리왕이 길쌈을 장려하기 위해 부녀자들을 두 패로 가른 뒤 한 달간 베를 짜게 했다"고 한다. 8월 보름이 되면 어느 쪽이 많이 짰는지에 따라, 지는 편이 음식과 술 등을 장만해 이긴 편에 사례하면서 함께 노래와 춤을 즐겼다. 추석이나 중추절은 '가배'보다 훨씬 후대의 기록으로 이전부터 '한가위' 또는 '가윗날'로 불려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때는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등의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냈다.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는 "올벼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 고려가요 '동동(動動)'에는 "팔월 보름은 한가윗날이지만, 님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진정한 한가위"라는 구절이 나온다.
한가위는 풍성한 수확에 따른 음식과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즐기는데에 의미와 재미가 있다. 추석 풍경은 달라졌어도 그 의미만큼은 되새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