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선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설립자 조용기 목사가 별세했다. 향년 86세.
조 목사는 14일 오전 7시13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고인은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지난 2월 부인 김성혜 전 한세대 총장이 먼저 세상을 떠나 유족으로는 세 아들이 있다. 고인은 1936년 경남 울산시 울주군에서 5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학과 전통적 종교문화에 익숙한 가정에서 자라난 고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을 앓던 가운데 병상에서 개신교를 접했고 이후 폐결핵이 나으면서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고인은 한국 개신교 부흥기를 이끈 원로 목사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인이 장모인 고(故) 최자실 목사와 함께 1958년 5월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서 시작한 천막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해 오늘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됐다. 교회는 여의도로 자리를 옮기면서 성장세가 가팔라졌다. 교인은 1979년 10만 명, 1981년에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교인이 70만 명에 이른 1993년에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의 교회’로 기록됐다.
조용기 목사는 훗날 장모가 된 최자실 목사와 함께 1958년 5월 18일 최 목사의 집에서 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참석자는 당시 전도사였던 두 목사를 비롯해 최 목사의 세 자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교인이 50명에 이르자 마당에 가마니를 깔고 군용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나날이 성장해 1973년 여의도로 자리를 옮겼고 한때 교인이 80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조 목사는 종교적 성취를 바탕으로 다양한 구제 사업을 벌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 목사가 1979년 실업인선교회를 설립한 것을 사회사업의 시작으로 본다. 조 목사는 이때부터 국내 보육원과 양로원, 빈민촌, 농어촌, 소록도, 교도소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다. 1999년 해외 민간 구호를 위해 설립한 선교 단체인 ‘한국선한사마리아인회’는 현재의 ‘굿피플’로 이어졌다.
구호의 손길은 식량난에 시달리던 북한으로도 향했다. 조 목사는 1995년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북한교회재건운동’을 전개했고 헌금을 모아 양곡 3,300가마를 북한에 지원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심장병원 건립을 제안하자 조 목사가 여기에 호응하기도 했다. 조 목사는 200억 원을 들여서 280병상을 갖춘 심장병원을 평양에 건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조 목사도 교회 사유화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교회가 부유해지면서 조 목사와 가족들이 교회 관련 단체들을 통해 교회 재산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조 목사는 2008년 당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이영훈 목사에게 자리를 넘겨줬지만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교회 관련 단체들을 통해서 교회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비판이 커졌고 2011년에는 교인들이 집단행동에 나서 공개적으로 업무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조 목사는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주식 투자에 수백억 원을 사용하도록 했다는 이유로 2011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됐고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형이 확정됐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에 마련됐다. 조문은 15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다. 장례예배는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열린다. 하관예배는 18일 오전 10시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