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문명을 개척하며 자연환경과 생물로부터 영감을 얻어왔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1998년 상어 피부를 모방한 전신수영복 등장 이후 수영 신기록들이 경신되자 기술도핑이라는 말까지 나온 바 있었죠. 물총새 부리를 본떠 만든 일본 초고속열차 신칸센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렇게 첨단영역에서만 생물 모방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삶 주변에도 있습니다.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테이프는 우엉 열매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게 되죠. 뜨거운 여름 프로야구 선수들은 눈 밑에 검은 아이패치를 붙이곤 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공을 태양 아래에서 찾으려면 눈부심은 최대의 적이거든요. 검정 무늬는 빛을 흡수하고 반사를 줄여 추적을 쉽게 만듭니다. 어찌 보면 야생동물에게서 그 힌트를 얻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에게도 눈부심은 불편하니까요. 특히 빠른 속도로 추적하는 맹금류에게 이 무늬는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태양복사가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연구는 지금까지는 없었지요.
이 연구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구진들은 매라는 종을 선택했습니다. 매는 사막과 열대우림, 남극을 제외한, 전 세계에 걸쳐 살아가는 가장 이상적인 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 1급종과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죠. 주로 해안가나 개활지, 섬 등지에서 서식하며 다이빙 속도는 시속 350㎞에 이를 만큼의 빠른 속도로 비행과 사냥을 합니다. 따라서 빛이 많은 환경에서 살아가지요. 비둘기나 도요물떼새 등 빠르게 나는 새들을 주로 사냥하므로 동체시력도 좋아야 하며 눈부심은 당연히 생존에 영향을 미치겠죠. 더군다나 매에게는 매우 진한 뺨선이라는 검고 굵은 무늬가 눈 밑에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징에 착안하여 전 세계에 분포하는 매의 뺨선 길이와 너비, 두드러진 정도를 해당 지역의 기온, 강우량과 자연광량과 같은 기후 요소를 통해 연관성을 찾으려 했지요. 이 연구에서 시민과학이 빛을 냅니다. 연구자들은 코넬대학교 매컬리도서관의 이버드(eBird)와 전 세계 자연관찰을 기록하는 아이내추럴리스트(iNaturalist)를 통해 94개 지역과 국가의 위치기록이 있는 2,000장이 넘는 매 사진을 구했습니다. 태양복사가설이 사실이라면 태양빛이 많은 지역의 매는 보다 크고 어두운 뺨선이, 빛이 약한 지역에서는 더 가늘고 좁은 뺨선이 있어야 하겠죠. 그 결과, 예상한 바와 같이 기온이나 강우량보다는 복사광량에 따라 뺨선의 폭이 넓어진다고 나타났습니다. 호주나 동남아시아, 중미 쪽에 서식하는 매보다는 고위도인 몽골이나 러시아, 캐나다에 서식하는 매의 뺨선이 더 얇고 가늘었습니다. 그러니 스포츠 선수들의 검은 아이패치는 매우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자연계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며 살아갑니다. 자연 보전이 개발보다는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 이유로 균형추 훼손을 반복합니다. 결국 탄소배출과 기후변화라는 어젠다가 현대의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서보다 우리가 자연에게서 얻어야 할 게 아직도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