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군인들의 승리의 서사

입력
2021.09.22 09:28
9.20 Don't Ask, Don't Tell

미국의 '분리평등 정책(Separate But Equal)'이 위선적이나마 차별을 당연시하던 시대에 평등이 이룬 진전이었다면, 1993년의 'Don't Ask, Don't Tell(DADT)' 원칙은 군대내 성소수자 차별을 지양하기 위한 '묵비'의 권리였지만 성정체성의 '침묵'을 강요하고 비가시화를 강제하는 억압의 수단으로 지탄받은 정책이다.

"누구든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게 할 것"이란 공약을 걸고 1992년 대선서 승리한 빌 클린턴은 취임 직후 의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의회는 1차대전 후 제정된 군형법과 독립전쟁 이후 일관되게 유지된 군대 내 동성애자 배제 원칙을 아예 일반법으로 더 강화하려 했다. 국방부 지침 'DADT'는 클린턴이 내놓은 일종의 우회책이었다. 누구도 병사 개인의 성지향과 정체성을 묻거나 밝히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 그 정책은 이듬해 2월 연방법으로 뒷받침됐고, 성소수자도 입대와 군복무 중에 차별 받지 않을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물론 동성애자 배제 원칙은 여전히 유효해서, 커밍아웃하거나 동성애 행위가 적발될 경우 강제전역 당했다. 1994~2009년 약 1만 3,000명의 성소수자가 강제 전역 당했다.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은 DADT법이 성정체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2008년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 주요공약 중 하나가 DADT 폐기였다. 2010년 12월 상원은 동성애자 차별·배제 원칙과 함께 DADT법을 폐기하는 법안을 65대 31로 가결했다. 이듬해 9월 20일 미 국방부는 DADT로 강제 전역 당한 전직 군인들의 재입대 신청을 허용했다.

미국 비영리 국제정치및 정책 싱크탱크인 'RAND 코퍼레이션'이 미군 1만6,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성소수자가 응답자의 5.8%였고, 남성 동성애자는 1.9%, 여성 동성애자는 7%였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