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백신과 월경 이상의 상관관계(9월 9일자)
독자님, 안녕하세요. 40대 이하 성인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대폭 확대되면서 우리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대하는 마음이 커졌어요. 하지만 여성들에게 백신 접종은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백신 접종 후 부정출혈, 월경 주기 이상 등의 증세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질병관리청은 예방접종 후 나타날 수 있는 '흔한' 이상반응으로 접종부위 통증, 발열, 피로감, 두통 등을 안내하고 있는데요. 왜 부정출혈이나 월경 주기 이상은 미리 안내되지 않았을까요? 더 사소한 증상이기 때문일까요? 이번 주 허스토리에서는 백신 이상반응의 중대성을 가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남성을 인간 표준으로 설정하는 탓에 여성들의 경험이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닌지 짚어봅니다.
▦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생리기간이 아닌 시기에 발생하는 하혈은 가장 공포스러운 일인데도 병원에 가면 피임약을 처방해 주거나 타이레놀을 먹으라는 말만 들을 뿐" (지난달 3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된 글)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하루 뒤에 갑자기 하혈이 시작됐다. 앉아 있던 의자가 흥건해질 정도로 갑자기 피가 쏟아져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30대 여성 A씨)
백신 접종 후 이 같은 증세를 겪었다는 여성들의 토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미 올해 봄부터 생리일 연장ㆍ지연, 예상치 못한 출혈 등 월경 이상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미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케이트 클랜시 미국 일리노이대 인류학과 교수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생물인류학자 캐서린 리는 코로나19 백신이 여성의 월경 이상 증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는데요. 이들은 백신 접종 후 생리량이 급증하거나 주기가 바뀌는 등 변화를 겪은 여성들의 증언을 14만 건 이상 모았습니다. 이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자체 조사를 통해 생리불순 등이 잠재적인 부작용이라고 확인했어요.
▦ 진짜 위험한 걸까요?
다행히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 같은 월경 이상 증상은 일시적인 것이고, 임신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한국일보에 "자궁 내막은 면역세포가 많기 때문에 면역계통에 변화가 생기고 혈액 응고 인자가 바뀌면 출혈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해외 전문가들의 설명도 이와 비슷합니다. 앞서 독감과 HPV 백신도 생리 주기에 일시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장기 부작용은 없었습니다.
조은희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안전접종관리반장은 온라인 브리핑에서 "스트레스라든가 피로, 갑상선 질환이나 자궁근종, 여러 약물반응 등 (월경 이상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이 다양하다"면서 "월경 이상에 대한 연관성이 공식적으로 국외에서도 제시된 바 없지만, 당국이 자료를 수집하고 신고를 받아서 그에 대한 연관성, 인과관계가 있으면 이른 시일 내 안내하겠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그러면 문제가 없는 걸까요?
허스토리는 이러한 잠재적인 월경 이상반응을 우려해 백신을 맞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의학적으로 밝혀진 인과성이 없으니 무조건 안심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팔 통증, 두통, 열'과 같은 증세와 달리 왜 월경 이상은 이 같은 백신 접종 증상으로 미리 알려지지 않았을까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보려는 거예요.
미국 밴더빌트 대학의 캐스린 에드워즈 교수는 NPR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두통이나 팔 통증 같이 사소한 부작용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받습니다. 하지만 '생리 주기가 불규칙적이었나요? 생리량이 많았나요?' 같은 구체적인 질문은 묻지 않죠." 인류의 반이 겪을 수 있는 증상이지만, 나머지 반은 겪지 않을 일이기에 애초에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요? 남성만을 기본 값으로 설정해두면 이처럼 여성들이 받을 수 있는 영향을 간과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 데이터에서 누락된 여성을 찾아주세요
이 같은 '남성 표준 세상'에서 간과된 여성들로 인해 젠더 데이터에 공백이 생깁니다. 영국의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저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인류의 역사가 남성을 기본값으로 흘러 왔기 때문에 거대한 젠더 데이터 공백이 발생했다고 분석합니다. 임상시험에서도 여성들은 으레 배제됩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실험, 심지어는 세포조차도 수컷, 남성세포만이 시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별 구분 데이터가 없으면 여자들에게 제대로 된 의학적 조언을 할 수가 없다"는 그의 말을 우리는 팬데믹 시대에 피부로 느끼고 있는 셈입니다.
의료 영역에서 피험자를 남성으로만 둘 경우 의약품은 남성에게만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혈압 치료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약물은 심장마비로 인한 남성 사망률을 낮추지만 심장 질환으로 인한 여성의 사망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약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진은 2014년 독감 백신을 생물학적 성에 따라 다르게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 성편향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기
남성을 위주로 임상시험을 이어 가면서, 여성에게 유익했을지도 모를 약들은 개발될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남성이 인류 전체를 대표할 수 있다는 전제로 발전되어 온 것은 '약'뿐만이 아닙니다. 왜 여성이 더 스마트폰을 자주 떨어트릴까요. 왜 여성은 사무실 에어컨 바람을 더 춥게 느낄까요. 왜 똑같은 자동차 사고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크게 다치거나 많이 죽는 걸까요. 답은 '여자라서'가 아닙니다. 여성까지 포함하지 않은 정책 설계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의료 임상시험뿐 아니라 정책 의사결정에 여성을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데이터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요. 혹시 아직도 '왜 이렇게 유난스럽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까요. 스스로가 디폴트인 삶만을 살아왔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성별을 구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는 남성만을 인간 보편의 기준으로 삼는 성차별과 젠더차별을 당연시 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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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러분도 한 달에 한 번씩 꼭 묻고 있는 질문. 왜, 대체, 아직도 획기적인 월경전증후군(PMS) 치료제는 없는 걸까요. 정답은, 연구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구 논문 통계를 내봤더니, 발기부전 관련 논문 수가 월경전증후군 관련 논문 수의 5배에 달했다고 해요. 여성들도 개인 차가 크고 증상이 천차만별인 탓에 치료제 개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은 했었지만, 남성과 여성이 겪는 증상에 대한 연구 격차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어요.
'보이지 않는 여자들' 속에는 혼자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사례들이 많아 'Her Story'를 통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요. 1990년대 초 심장약으로 임상시험을 하던 실데나필 시트르산염에서 의외의 효능이 발견됩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비아그라의 효능인데요. 피험자들이 '모두' 남성이었던 덕분에 얻게 된 결과였습니다. 이후 연구진은 실데나필 시트르산염의 월경통 소염 효과 연구를 이어 가려 했지만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연구비를 거절당했다고 해요. '남자들은 월경통에 관심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연구진의 분통이 책 너머로 전해집니다.
남성들이 월경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지체 높은 정치가들이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의회는 월경불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는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한다. 연방정부가 생리대를 무료로 배포한다…"고 미국 여성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미 1978년에 '상상'한 바 있습니다. 남성들이 진짜 월경을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남성이 여성의 삶 또한 인류 보편의 삶이라는 걸 알아차리기만 해도 '월경통 연구비 지원'은 현실이 되지 않을까요.
앞서 'Her word'에 소개해 드린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서, ‘여권통문’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는 9월 첫 주를 양성평등주간으로 지정했어요. 1898년 발표된 이 통문은 여성의 교육권, 참정권, 경제활동권을 강조합니다. 2021년 버전의 여권통문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할까요? "세계를 다시 설계하려거든 세계의 절반인 여성에게 먼저 물어보라"는 페레스의 말과 함께 이번 주 뉴스레터를 마감합니다.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9월 9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