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민주당 이낙연 경선 후보가 "다른 후보들에 대해 일절 네거티브적 언급조차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지난달 8일에는 이재명 경선 후보도 같은 선언을 했다. '내검남네'(내가 하면 검증, 남이 하면 네거티브)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혼탁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여당 1, 2위 주자들이 차례대로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네거티브'가 정말 문제일까? 포지티브한 정책 경쟁이 펼쳐지면 선거판도, 정치문화도 한 단계 성숙하게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거티브는 죄가 없다.
일단 현행 공직선거법 제58조 1항도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누군가를 당선시키기 위한 행위, 즉 포지티브와 누군가를 낙선시키기 위한 행위, 네거티브는 선거운동으로 동등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이 두 행위를 엄격히 분리할 수도 없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의 선임 편집자를 지낸 정치분석가 데이비드 마크는 자기 저서인 '네거티브 전쟁: 진흙탕 선거의 전략과 기술'에서 "어떤 후보도 자기 단점에 대해 충분히,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지 않는다.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정보는 상대가 네거티브 공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경우에나 얻을 수 있다"고 네거티브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상대 후보의 숨겨진 흠결을 드러내는 것,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즉 네거티브가 없는 선거란 있을 수가 없다.
"민주사회에서 공직자들은 공적인 활동과 사생활에 대한 상상도 못 할 비판을 기꺼이 수용해야만 한다. 다소 억울할지라도 말이다. 혹여 네거티브 공세에 고개를 숙이거나 대응에 실패한다면 거칠고 험난한 선출직 공직을 훌륭히 수행하기 힘들다는 방증일 수 있다"는 같은 책의 구절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다.
문제는 네거티브가 필수적이고 효과적이지만 상당히 어렵고, 게다가 위험하다는 점이다. 호응이 없는 포지티브 정책은 먹히지 않는데서 그칠수 있지만 효과적이지 않은 네거티브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검으로 상대의 약점을 찌를 때는 내 몸의 같은 지점이 노출되기 때문에 역공의 빌미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미국이나 우리 선거의 역사를 보면 선공 여부나 흠결의 가짓수 차이가 본질적 요소도 아니었다.
이재명과 이낙연의 순차적 선언에서도 네거티브의 전략과 기술을 읽을 수 있다. 민주당 경선 초기 이재명 후보는 도덕성, 정체성, 정책 세 측면에서 동시에 집중 네거티브 포화를 맞았다. 하지만 주춤거리던 이재명 캠프는 이낙연에 정밀 타격을 가하는 네거티브 역공을 펼쳤다. 가족 검증 공세가 펼쳐지자 뜨거운 감자인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된 이낙연의 측근 의혹을 끄집어냈고 적통 논란에 대해선 17년 전 탄핵의 기억을 소환했다.
이재명 캠프는 이처럼 효과적 반격을 가한 후에는 전격적으로 '네거티브 중단'을 선수 쳤다. 이런 수순은 상대를 네거티브 프레임에 가두는 정교한 네거티브 전략에 다름 아니다. 결국 2위도 한 달 뒤에 따라왔으니 성공한 것이다. 민주당 경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네거티브 전쟁의 승자는 이미 가려진 것 같다.
민주당보다 진도가 좀 늦은 국민의힘은 이제 시작이다. 네거티브 공방, 네거티브 자제 주장, 누군가의 네거티브 중단 선언이 차례로 똑같이 이어질 것이다.
그 이후 펼쳐질 본선에서는 아마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