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새 정부를 출범시킨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본색’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언론 자유 보장’ 선언이 무색하게 미디어 탄압 수위는 날로 높아지고, 인권 시계도 20년 전으로 빠르게 되돌아가고 있다.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기존 정부를 축출한 지 거의 한 달이 됐지만, ‘정상국가’로 인정받겠다며 내세운 각종 약속은 허울뿐인 공언(空言)으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11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날 카불 대통령궁에 흰색 상징기를 올리고 새 정부 업무 시작을 공식화했다. 예컨대 압둘 바키 하카니 과도정부 고등교육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여성은 대학 교육뿐 아니라 졸업 후 교육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남성과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을 수 없고,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는 제한을 뒀으나, 과거 탈레반 통치 1기(1996~2001년)와 비교하면 다소 진일보한 모습이다.
그러나 현장 곳곳에선 탈레반이 만든 ‘암흑 시대’로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언론은 1개월 사이에 180도 바뀐 세상을 생생히 체감하는 분야 중 하나다. 지난 20년간 미국을 등에 업은 아프간 정부의 부패마저 거침없이 폭로하는 등 ‘보도의 자유’를 만끽했지만, 탈레반 재집권과 함께 이제는 풍전등화 신세다.
매주 금요일 밤 수백만 명이 시청하던 최대 정치 코미디 쇼의 제작이 중단된 게 대표적이다. 리얼리티쇼와 음악 방송, 드라마도 자취를 감췄다. 반(反)탈레반 시위는 당연히 전파를 타거나 활자화되지 못한다. 탈레반이 임신한 경찰관을 사살했다는 소식도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심지어 기자들은 자유로운 취재활동은 고사하고,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9일에는 수도 카불에서 여성 인권보장 시위를 취재하던 언론인 19명이 탈레반에 의해 구금됐고, 급기야 현지 신문기자 두 명이 채찍과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일까지 발생했다. 몸 곳곳에 피멍이 든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되면서 국제사회가 공분하기도 했다.
언론 탄압은 ‘몸 사리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7월 기준 아프간에 △TV 네트워크 248개 △라디오 방송국 438개 △인쇄매체 1,669개 △통신사 119개가 활동했던 반면, 최근 들어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불확실한 미래’를 이유로 운영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종사자 수백 명도 이 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아마드 쿠리아시 아프간언론센터 소장은 2001년부터 누려 온 언론 자유가 ‘꿈만 같았다’고 회상하며 “탈레반 집권 후 언론의 모든 게 하룻밤 사이에 바뀌었다”고 한탄했다. 이달 초 국경없는기자회에 “언론 자유를 존중하겠다”고 했던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의 다짐은 빈말로 드러났다.
민간인을 향한 참혹한 폭정과 인권유린도 현실이 되고 있다. 특히 반탈레반 연합군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의 거점인 북부 판지시르주(州)에서는 저항군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마저 목숨을 위협을 받고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이 지역을 탈출한 사람을 인용, “탈레반이 주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 공급을 거부하고 민간인을 처형했다”고 보도했다. 어린이를 포함한 8명이 ‘저항군 지지세력’도 아닌데 목숨을 잃었다는 증언이다. WP는 “판지시르에서 (탈레반의) 인권유린 행태가 늘고, 테러와 공포 위협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에는 탈레반이 이곳에서 ‘저항군 지도자인 암룰라 살레 전 부통령의 친형 로훌라 아지지를 처형하고 시신 매장마저 막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탈레반 측은 “교전 중 사망한 것”이라며 처형설을 부인했으나, 저항군에 대한 ‘잔혹한 보복’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