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를 두고 미국 내 찬반 논쟁이 뜨겁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내놓은 이 조치를 보건 전문가들은 크게 환영하는 반면, 공화당은 소송전도 불사하겠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대립 양상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대기업들도 바이든 행정부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위법’이라는 공화당 주장과 달리, 법적 근거도 충분하다는 견해가 많다. ‘공화당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정략만 추구한다’는 비판이 커지는 모습이다.
11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연방정부 직원(계약직 포함) △메디케어(건강보험) 및 병원 종사자 △100인 이상 직원을 둔 민간 기업 등에 적용되는 ‘백신 접종 의무화’ 명령의 토대는 1970년 제정된 직업안전보건법이다. 연방정부가 작업장 내 심각한 위험으로부터 노동자 보호를 위해 비상 권한을 행사하는 걸 허용하는 법이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수단”이라는 게 백악관 주장이다. 리나 웬 의료 분석가도 CNN방송에 “백신을 맞지 않고 외출하는 건 만취 상태 운전과 같다”며 “공중보건 관점에서 전혀 과도하지 않을뿐더러, 훨씬 더 일찍 취했어야 할 조치”라고 말했다.
직업안전보건법은 그간 주로 석면 발생, 화학물질 노출 같은 산업 분야에 적용됐다. ‘공중보건 위기’에 동원된 건 법 제정 이후 51년 만에 처음인데, 공화당이 문제 삼는 게 이 지점이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노골적 불법”이라며 발끈했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완전한 무법”이라고 비난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입헌 정치와 법치주의, 수백만 미국인의 일자리와 생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공화당전국위원회는 “미국인의 자유를 수호할 것”이라며 법적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당수 법률 전문가는 “법적 근거가 탄탄하다”고 본다. 린제이 와일리 어메리칸대 법학 교수는 “법의 적용 근거는 심각한 위험과 시급성인데, 현 상황은 법 제정 이래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근거가 된다”며 “전례 없는 위기 상황임을 고려하면, ‘전례 없는 조치’라는 게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NBC방송에 말했다. 데이비드 마이클스 조지워싱턴대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도 “명확하고 간단하다. 노동자들의 직장 내 감염을 막겠다는 것이다. 법적 요건은 ‘직장을 안전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고 못 박았다.
백신 접종 의무화를 가장 환영하는 곳은 기업이다. 직원들이 감염자 또는 격리자가 되면 그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반강제적 백신 접종’을 택한 기업도 많지만 직원들의 반발이나 대규모 퇴사를 우려해 주저하는 곳이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기업들도 정부 명령에 따라 ‘당위성’을 얻게 됐다. 찰스 시펀 미시간대 정치학 교수는 “기업은 원래 정부 개입을 원치 않으나, 코로나19는 예외”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명령이) 기업들에겐 방패막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공화당의 텃밭에 있는 기업들이 백신 접종 의무화를 반긴다는 사실이다. 텍사스주 휴스턴상공회의소의 경우, 회원사가 있는 11개 카운티 중 9곳이 작년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엑손모빌(석유회사), JP모건(은행) 등 전통적 보수 성향 기업들도 다수 있다. 하지만 밥 하비 휴스턴상공회의소 최고경영자(CEO)는 “백신 접종 의무화 도입으로 근로자 이탈을 우려한 기업들 부담이 사라졌다”고 평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의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가 전통적 지지세력인 기업들과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물론 현실적 걸림돌이 없지는 않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미국 전체 사업장의 3분의 2, 최대 8,00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미국은 주정부 권한이 워낙 강해서 연방정부의 행정력ㆍ강제력 동원에는 한계가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직업안전건강관리청(OSHA) 고위 관계자였던 데비 버코위츠는 “예산과 인력의 한계상 미국 노동자의 3분의 2에 대해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려면 150년이 걸릴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