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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8시 46분(현지시간), 20년 전 9·11 테러 그날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건물에 알카에다가 납치한 여객기가 충돌하던 그 시각에 맞춰 ‘침묵의 종’이 울렸다. 추모식 참석자들은 2,977명의 테러 희생자를 기리며 고개를 숙였다. 추모 묵념을 시작으로 올해로 딱 20년을 맞은 9·11 테러의 아픔을 되새기는 행사가 뉴욕, 워싱턴, 펜실베이니아주(州) 생크스빌 등 미국 전역에서 이어졌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과 유족, 시민 등 많은 사람이 추모 행사에서 ‘미국의 단합’을 기원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추모식 참석 대신 영상 메시지를 내고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와 미국 내 극단주의 확산을 놓고 공방도 이어졌다.
파란색 추모 리본을 단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이날 오전 WTC 테러 공격 현장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 9·11 추모 공원에서 열린 9·11 테러 20년 추모식에 참석했다. 행사에는 버락 오바마·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정치권 인사도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8시 46분 첫 타종에 이어 당시 연쇄 항공기 테러가 일어난 오전 9시 3분(WTC 남쪽 건물), 오전 9시 37분(워싱턴 인근 국방부 청사 펜타곤), 오전 10시 3분(생크스빌) 등에 맞춰 세 번 더 타종과 묵념이 있었다. 또 유족들이 돌아가며 당시 희생자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는 순간 바이든 대통령은 흐르는 눈물을 닦기도 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장 연설 대신 10일 밤 6분짜리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다. 그는 “9·11 테러가 벌어진 이후 우리는 곳곳에서 영웅적 행위를 보았고, 국가 통합의 진정한 의미를 느꼈다”며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고 미국이 최고에 있게 하는 것이 단합”이라고 밝혔다.
또 “(9·11 세대가) 테러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를 붙잡고 미국에 해를 가하려는 이들에게 ‘추적해 책임지게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군 복무에 나섰다”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오늘도, 내일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뉴욕 행사에 이어 테러범과 싸우다 생크스빌에 추락해 숨진 유나이티드항공 93편 탑승객 추모, 184명이 희생된 펜타곤 테러 현장 등에 잇따라 참석했다.
미국 전·현 대통령의 엇갈린 메시지도 눈길을 끌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생크스빌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이 시험대에 선 비탄의 날에 수백만 국민이 본능적으로 이웃의 손을 잡고 함께 대의를 향해 나아갔다”며 “이게 내가 아는 미국”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 내 극단주의 세력을 겨냥해 경고 메시지도 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위험은 국경 바깥에서도 오지만 내부의 폭력에서도 온다는 증거가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와 국내의 극단주의자 모두 다원주의와 인명을 경시하는 등 더러운 정신의 산물”이라며 “이에 맞서는 것은 우리의 계속된 의무”라고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시위대의 지난 1월 6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같은 극단주의 세력 발호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 추모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다. 그는 “(아프간) 전쟁 20주년이고 승리와 영광과 힘의 해가 돼야 했으나 바이든과 그의 서툰 정부가 패배 속에 항복했다”라며 “나라의 지도자가 바보처럼 보였고 이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에서 소방관, 경찰관 등을 만난 뒤 저녁에는 플로리다에서 열린 헤비급 전 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 권투 경기 해설자로 나섰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반박했다. 그는 생크스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은 아프간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첫 번째 기념일”이라고 아프간 철군 결정을 옹호했다. 또 부시 전 대통령의 극단주의 경계 연설을 칭찬하며 미국 내 극단주의가 해외 테러만큼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