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잃은 폴 김 “왜 그런 비극 일어났나 되새겨야” [9·11 테러 20년, 그 후]

입력
2021.09.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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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테러 당시 출근했다 희생된 앤드루 김 부친
장학재단 만들어 아들 뜻 기려...평화운동 강조


그 날도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미국 프레드 앨저 투자회사 4년차 재무분석가 앤드루 재훈 김(당시 27세)씨는 2001년 9월 11일 여느 날처럼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타워 97층 사무실로 출근했다. 하지만 김씨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날 오전 8시 46분 테러 조직 알 카에다 조직원 5명이 납치한 아메리칸항공 11편 여객기가 이 건물에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 테러로 김씨를 포함해 WTC에서만 2,752명이 희생됐다. 한국계도 21명이나 포함됐다.

9ㆍ11 테러 20년을 나흘 앞둔 7일(현지시간) 뉴저지주(州) 잉글우드클리프스 앤드루 김 추모재단 사무실. WTC에서 숨진 김씨의 이름을 따 추모재단을 만든 아버지 폴 김(80) 이사장이 주섬주섬 파일을 꺼내왔다. 아들 ‘앤디’의 사진부터 추모집, 사건 관련 서류 등이 담겨 있었다. 아들을 잃은 상처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언론 접촉을 거절해왔던 김씨는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참 좋은 아이였어요. 고등학교 때도 기타에, 플루트와 클라리넷까지 다 다루고 밴드도 만들었죠. 교회에서,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죠.”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전도유망한 회사에 취직해 앞길이 창창했던 아들 김씨의 죽음 이후 김 이사장 가족은 길고 긴 침묵에 빠졌다. 1971년 이민을 와 뉴욕에서 여러 사업을 하며 키우고 지켰던 둘째아들을 잃은 ‘참척’의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다시 힘을 내야 했다. 아들 김씨의 재산과 보상금, 기부금 등을 모아 2002년 추모재단을 만들었고 장학사업에도 나섰다. “앤디가 나온 고교, 대학과 장학재단에 지원을 하고 있어요. 20년간 200명 넘게 지원을 했더니 수혜를 받은 사람 중에는 박사도, 교수도 나왔을 정도죠. 9ㆍ11이 되면 안부를 묻는 연락이 미국 전역에서 옵니다.”

김씨 가족들이 사는 뉴저지 일대에는 아들 김씨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름을 붙이고 공간을 만든 도로, 공원, 도서관, 테니스장도 생겼다. 김 이사장은 11일에는 지역에서 열리는 추모예배와 맨해튼 추모행사 등에 참석해 아들과 희생자들을 기릴 예정이다.


재단은 9ㆍ11 테러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고, 진정한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평화운동에 도움이 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김 이사장은 “단순히 9ㆍ11을 기억만 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함께 짚었으면 좋겠다. 왜 그런 테러가 일어났는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잉글우드클리프스(뉴저지)= 정상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