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이 예전에는 일부였고, 그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2~3년 사이 대다수가 하고 있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게 돼 버렸죠. 제게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을 추월한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의 현실 대처 방식을 다룬 전시 '믿음의 자본'이 서울 영등포구 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권정현(30)씨는 주위의 기류가 바뀐 것을 포착, 이를 미술 전시로 풀었다. 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TV에 나와 당당하게 건물주가 꿈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이들뿐 아니라, 나름의 성취를 이룬 이도 다를 게 없었다. 권씨는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의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면서 해당 전시를 선보이게 됐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1980년대 후반 또는 1990년대생들. 권씨는 "겉으로 보기에 저희 세대가 자본에 열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이빈소연 작가의 설치작 '만사형통 가든'은 젊은층에서 유행하고 있는 '미라클 모닝' '억만장자 모닝루틴'과 같은 자기계발 담론을 소재로 삼았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이나 명상을 한 뒤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만들면 성공을 할 수 있다?' 권씨는 이 같은 담론이 개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고 봤다. 사회 구조적 문제일 수 있는 부분을 개인의 노력 부족 문제로 돌려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샐러리, 케일 등 아침에 갈아먹는 채소로 정원용 식물 삼아 가든을 구성하고 도교 문양을 넣어 부를 기원하는 자기계발 논리를 일종의 제단 형태로 시각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눈길이 가는 또 다른 작품은 건축물 너머의 보이지 않는 자본 현상, 불안,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은희 작가의 '여의도 투어: 환상의 버블'이다. 금융사 건물이 즐비한 서울 여의도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것이다. "자본 시장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벌고, 금융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참여조차 할 수 없죠. 자본으로 소득을 증가시키는 게 쉬운 세상은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킬 거라 봅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 불안하고 흔들릴 때가 많다. 권씨는 "당장 내년에 어떤 일을 할 지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특히 미술계가 그렇다"며 "주식 등 누구나 다 하는 걸 혼자만 안 하고 있으면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씨는 자본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시를 기획한 핵심적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가 다 안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가끔 해 봐요. 전시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시는 1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