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에서 약 170명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치료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직원들은 일상을 회복하고 있을까. 구로 콜센터 근무자 98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진행한 조사단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놨다. 노동자 중 일부가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심각한 수준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까지 확인됐다.
9일 윤미향 의원실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 주최한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 피해실태 조사 발표 및 토론회'에서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1년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노동자들 건강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서적 문제가 두드러졌다. 현재 남아 있는 증상으로 우울감과 불안을 꼽은 노동자가 각각 27.8%, 18.5%다. 우울증 진단도구 검사에선 22.7%가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전 국민 비중(8.7%)의 2.5배다. 즉각 개입이 필요한 PTSD 환자 비중은, 소방관 PTSD 유병률(15.1%)을 훨씬 웃도는 28.4%다. 자살계획과 자살시도를 한 적 있냐는 질문에서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2명씩 나왔다. 김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5개월간 진행된 조사에 참여했다.
원인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아프면 쉬기'를 주장했지만, 콜센터는 다른 나라였다. 유급병가가 없기 때문에 연차를 사용해야 했지만, 인력난 때문에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가 없었다. 연차가 남지 않은 사람은 무급휴가를 택해야 한다. 집단감염 때문에 직원들이 자가격리에 들어가자 회사는 '업무정상화'를 이유로 재택근무용 노트북을 나눠줬다.
조사단의 전주희 석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저마다 집의 환경이 다르다보니 퀵으로 배송받은 노트북을 업무 시스템에 연결하는 것만 해도 스트레스 받고 고생한 분들이 있다"며 "사측은 그 시간마저 근무시간에서 빼 월급을 깎았다"고 지적했다.
치료 중인 동료의 몫까지 업무량 폭증을 감내한 이들에게 돌아온 건 '격려'가 아닌 '고립감'이었다. 전 연구원은 "책임 있는 관리자가 나서 대응방안을 설명하고 업무를 나눠지는 게 아니라, 과도한 업무 주문에 임금삭감까지 겪다보니 자신들의 수고로움을 부정당하는 감정이 증폭됐다"고 말했다. 거기다 집단감염이라는 이유로 주거지, 이동경로 등이 공개돼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문제는 지금도 변한 게 없다는 점이다. 여전히 51.6%가 '연차 사용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연차를 쓰는 것에 부담을 주는 분위기'(50%)가 가장 큰 이유였다. 연차를 쓰면 월급이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 역시 37.5%가 공감했다. 수익 극대화, 비용 절감이 최우선인 원하청 구조 상태에선 유급병가제 도입 등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고용노동부도 콜센터 점검 후 관리 강화 등 지침을 내렸지만, 그후 구로 콜센터에 생긴 변화는 마스크와 체온기가 생긴 것뿐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집단감염이 초반에는 콜센터, 그다음 육가공업체, 지금은 또 외국인 근로자로 계속 옮겨가다 보니 한 분야에 집중 못 했던 게 사실"이라며 "지금까지 운영했던 지침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