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도 한때는 X세대였다 

입력
2021.09.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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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태어나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중학교 때는 일제의 잔재로 여겨지던 교복을 입었던 마지막 세대였고, 대학 시절에는 최루탄과 물대포를 맞으며 민주화를 위해 맞섰던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였다. 대학 시절 내내 선배들로부터는 ‘보릿고개’를 모르는 철부지로 불렸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난데없이 소비와 향락문화의 아이콘이라는 X세대가 등장해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꼈다. 민주화의 주역이란 자부심이 가득했던 선배들과 기존의 가치나 관습에서 자유로웠던 후배들 사이에서 90년대 중반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가치관 혼란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고작 몇 살 차이일 뿐인데, 386세대라 불리는 선배들과 X세대라 불리는 후배들 사이에 끼여서,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도 있었다. 이 나라의 민주화와 산업 발달에는 분명 우리의 공도 있는데 알아주는 이는 없었으니까. 윗세대들은 우리를 가리켜 자신들이 바친 청춘의 ‘수혜자’라며 우리를 자신들과 구분하여 생각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암울해 보이는 자신들의 미래가 기성세대 때문이라며, 우리를 윗세대와 한데 묶어 원망한다. 선배들로부터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이겨낸 동반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젊은 세대로부터 사회에 기여한 선배로 대우받지도 못하는 서러운(?) 신세가 지금 50대 초반인 우리 동년배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위치는 개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오랜 친구들과 때때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신세 한탄이 늘어지곤 한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세대 간 갈등으로 인해 힘에 부치는 경험은 우리 세대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들은 우리 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길 들어주고 그들과 더불어 공존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처럼, 우리 앞에 달려와 있는 90년생처럼, 우리 69년생 철수와 70년생 영희도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이해받고 관심받고 배려받고 싶다. 우리 세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움직임이 언제 있었던가? 있다면,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기억나는 건 고작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정도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공동체를 위해 제 몫을 다하며 성실하고 올곧게 살아왔음에도 그 공을 제대로 조명받아 본 적 없다는 서러움, 지금도 여전히 앞세대와 뒷세대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이대로 시간이 흘러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가 되는 순간, 턱없이 줄어들 소득에도 불구하고 납부해야 할 건강보험료는 껑충 뛰게 된다는 냉혹한 현실이 주는 노후 불안이 우리 세대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내적 경험이다. 같은 시대적 사건을 함께 겪으며 나이 들어온 동년배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 내적 경험은 씁쓸하게도 어쩔 수 없이 우리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삶의 과제일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였기에 이쪽도 저쪽도 다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지금은 21세기에 태어난 아들딸로부터 ‘20세기 옛날 사람’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지만, “얘들아, 한때는 엄마 아빠도 신세대였다.”


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