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그 눈빛, 엄마가 빠졌던 '양조위'... 딸도 반했다

입력
2021.09.11 11:00
할리우드 영화 '샹치' 개봉이후
엄마와 MZ세대 딸 '덕후 몰이'
과거 작품들 재조명되며 인기


"샹치로 입덕한 뉴비입니다. 같이 양조위 얘기할 사람 구합니다."

10대·20대는 '덕통사고(연예인에게 반한 것을 교통 사고에 빗대어 이르는 말)'당한 신입 덕후를 '뉴비'라 일컫습니다. 어쩐지 뉴비라는 말과 량차오웨이(粱朝偉·양조위)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요. 이 모든 것이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샹치上氣·기를 다룬다)'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량차오웨이'라고 써야 맞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리꾼들이 양조위라고 적었기 때문에 기사에서는 양조위로 표기합니다.)

영화 '샹치'는 1일 개봉한 마블의 첫 아시안 히어로 작품입니다. 암흑 조직 '텐 링즈'의 수장인 아버지 '웬우'와 암살자의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초인적 힘을 깨달은 영웅 '샹치'의 대결을 그렸습니다. 웬우 역은 양조위(59)가, 주인공 샹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김 씨네 편의점'에서 한인 부부의 아들 교포 2세 역으로 얼굴을 알린 시무 리우(劉思慕·32)가 맡았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배우 양조위

시무 리우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한 세대 위만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양조위는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입니다. 40~60대 대부분은 홍콩 영화가 전성기를 누리던 1980~90년대에 청춘을 보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양조위가 나왔네"가 아니라, "양조위가 할리우드 영화에 나왔네"인 셈이죠. '샹치'에서 양조위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합니다. 시무 리우의 어머니 역시 아들의 촬영보다 "오늘 양조위랑 촬영했니?"를 물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데요.

한 지역 맘카페 이용자는 "샹치 보고 양조위 나올 때마다 입틀막했어요. 중경삼림 처음 봤을 때의 그 감격이 떠오릅니다"(hag*******)라며 감상을 밝혔습니다. 다른 누리꾼들 역시 "중딩 때 주윤발 다음으로 양조위에 반했었어요. 예매해서 보러가야겠어요"(gjl****), "양조위가 마블 악당이라니, 뭔가 사연 있는 악역일 것"(bey*****)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다소 젊은 30~40대가 모인 맘카페에서는 학창 시절 양조위를 좋아하던 감성을 꺼내 공유하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양조위로 세대 통합, 엄마와 딸은 함께 덕질 중

반면 그는 젊은 세대에겐 그리 친숙하지 않은 배우입니다.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화양연화'와 같은 '필모그래피(Filmography·특정 배우나 감독이 출연 혹은 연출한 작품 목록)'가 명작 반열에 올랐다 해도, 특별히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접하기 쉽지 않습니다. 10대에서 20대 초반인 이들은 양조위의 전성기 이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시 양조위입니다. '샹치' 이후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글들이 범상치 않네요. 영화 관람 이후 '양조위 뉴비'를 자처하는 10·20대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엄마는 물론 딸까지, 양조위의 눈빛이 두 세대에 통한 셈입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엄마가 영화 뭐 보냐길래 양조위가 멋있게 나오는 영화 보려고, 하니 양조위..? 하면서 솔깃해함(@imyo********)"이라고 전하기도 했네요. 또다른 이용자도 "양조위 덕통사고 당한 걸 엄마에게 말한 날… 엄마의 실제 반응은 드디어 내 딸과 양조위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되다니"(@ISMK***********)였다고 할 정도니까요.

10·20대는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입니다. 트위터에는 "오늘 엄마한테 양조위 이야기 꺼냈다가 양조위 역사 들음"(ppp******), "근데 일단 양조위를 가지려면 우리 엄마랑 먼저 싸워야 하는 거지"(bel*****) 등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한 이용자는 "내가 양조위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가 나한테 영업해서"(Pik******)라고 밝히기도 했네요. '샹치'로 세대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MZ세대가 양조위를 덕질하는 법


양조위 뉴비인 MZ세대의 덕질은 더욱 특별합니다. 이들에게 차곡차곡 쌓인 과거 영상들은 보물과도 같습니다.

양조위의 영상을 편집한 대량의 '밈(Meme·온라인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는 짤방 혹은 패러디물)'은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의 출연작들은 물론이고 본 성격을 알 수 있는 인터뷰, 배우자 유가령과의 사랑 이야기까지 전부 재료가 됐습니다.

'본캐'와 '부캐'를 나누는데 익숙한 MZ 세대 사이에서 덕질 포인트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죠. 낯 가리는 그의 인터뷰 현장 모습, 가정적인 면모 등은 작품 속 강렬한 눈빛과 대비되며 인기를 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이유입니다.

6일 트위터에서는 양조위의 대표작 '중경삼림'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화제성이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중경삼림 찍을 때 경찰 유니폼 입으려면 허락받아야 하는데 안 받아서 진짜 경찰 지나가면 양조위 옷 코트로 가리면서 찍었대(@Say******)" 등의 20여년 전 일화도 인기입니다.

트위터 양조위 팬 계정들에는 "양조위는 그렇게 나이먹은 얼굴이 되는 데 60년이 걸렸지만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2시간이면 충분. 가성비 짱(@jop******)", "양조위 이 웃긴 아저씨 눈빛 하나로 처연하고 애절하고 서사를 완성시켜버리네(@imyo********)" 등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젊은 신참 팬들이 양조위의 역사를 '필모 깨기(배우의 작품들을 정주행하는 것)'와 '짤 생성'이라는 특유의 덕질 문화에 맞춰 이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양조위의 사연 있는 눈빛은 세대도, 국경도 넘어 통했습니다. 소녀 팬이었던 엄마의 기억이, 딸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봉 2주차 7일, 누적 관객수 80만을 돌파한 '샹치'가 얼마나 더 큰 신드롬을 몰고 올지 기대됩니다.

전세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