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5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한 한국MSD의 고지혈증 복합제 '아토젯(성분명 아토르바스타틴, 에제티미브)'은 올해 1월 말 특허가 만료됐다. 그러자 300여 품목이 일제히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병·의원에서 고지혈증 복합제를 처방받는 환자수는 큰 변화가 없는데,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이 대폭 늘어나면 제약사 간 경쟁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특허가 풀리면 쏟아지는 제네릭(복제약)은 국내 제약업계의 현주소인데, 앞으로는 이 같은 무더기 복제약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일부 개정 약사법에 따라 지난달 20일 '임상시험 자료 공동이용 제한(1+3)'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 대신 내수시장에서 복제약 경쟁에 치중해온 중소제약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일부 개정 약사법은 임상시험 자료를 공동으로 이용한 품목 수를 최대 3개까지만 허용하는 게 골자다. 그동안은 동일한 임상시험 자료를 활용해 복제약을 제한 없이 만들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오리지널 의약품 1개에 복제약 3개를 합쳐 총 4개만 가능해진 것이다. 동일 성분 의약품을 수백 개씩 허가받아 경쟁하는 '제네릭 난립'에는 제동이 걸렸다.
여러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프로젝트)을 보유한 대형 제약사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대다수 제약사들은 자체 파이프라인 대신 제네릭 위탁 생산 등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완제의약품 생산 실적이 연간 100억 원 미만인 국내 제약기업은 110개나 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탓에 국내 제약산업은 특허가 만료되면 복제약을 만들어 내수시장을 공략하는 사업 구조 중심으로 흘러왔다. 자체 파이프라인을 갖춘 소수의 제약사가 총 33개의 신약을 개발했지만 영세한 다수의 제약사들은 이 해묵은 수익모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제네릭 난립 방지 대책을 중소제약사 규제로만 볼 게 아니라 자체 R&D 확대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제약에만 의존해서는 경쟁력을 키울 수 없는 것은 물론 코로나19로 급성장한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더는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다. 또한 의약품의 안정성 향상도 중요한 이유다. 식약처는 약사법 개정 때도 "동일한 의약품의 과도한 난립을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사업 방향을 바꿔야 하는 중소제약사들은 막막함을 호소한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복제약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유효성분, 효능‧효과 등이 동일한지 인체 투여를 통해 확인하는 시험) 1건에만 수억 원이 필요한데, 대규모 연구·개발(R&D)을 진행할 기초체력을 갖춘 대형 제약사와 달리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한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성장을 위해서는 개발 비용이 낮은 제네릭을 통해 수익을 낸 후 이를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야 하는데, 제네릭 사업이 막히면 영세한 곳일수록 신약 개발에 투자할 '실탄'을 만들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