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허성호씨 집에는 욕실에도, 주방에도 그 흔한 플라스틱 펌핑 용기 하나 없다. 가족 모두가 액상 샴푸 대신 샴푸바, 린스바로 머리를 감는다. 설거지도 설거지용 비누로 한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예전에는 그저 재활용 잘하는 정도였다면 올해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플라스틱, 비닐을 줄이는 방식으로 구매 패턴을 바꿨다"며 "이런 행동이 환경에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누가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일회용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플라스틱 용기에 든 액체 세제를 더는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닐, 플라스틱과 같은 포장재 쓰레기를 크게 줄일 수 있어서다. 액체 세제는 세안 비누, 샴푸바, 설거지 비누, 세탁 비누 등 고체 세제로 빠르게 대체되는 추세다.
유기농 비누를 만드는 '가치솝'의 손숙현 대표는 "최근 설거지 비누의 경우 시험 삼아 써 보다가 정착해 대용량(400g)을 찾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비누가 거품을 내기 번거롭다거나 잘 무른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환경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세제는 특히 모든 가정의 주방, 욕실, 세탁실에서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고체 세제로 대체했을 때 쓰레기 감축 효과가 크고 또 지속적이다. 작지만 큰 변화를 부를 수 있는 일상 속 실천인 셈이다. 비건 화장품 업체인 '더비건글로우'의 허지희 부대표는 "샴푸바는 액상 세제의 80~90%를 차지하는 물을 제외하고 유효 성분만 압축해 만든다"며 "100g 샴푸바 하나를 사용하면 1, 2통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고체 비누의 친환경적인 취지에 맞춰, 포장재는 종이로 제작하고 이마저도 최소화하는 추세다. 최근 샴푸바를 출시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틴(TinN)'의 김보령 대표는 "친환경 포장을 위해 비닐, 스티커, 접착제 없이 콩기름 잉크를 사용한 단상자 방식의 패키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보연(44)씨도 샴푸바, 설거지 비누를 사용한다. 액체 세제를 쓸 때보다 일회용 쓰레기가 많이 줄었고, 가끔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 외에는 별다른 불편함도 없다. 김씨는 "기존에는 리필 제품을 쓰더라도 비닐이 나왔고, 이 비닐도 뚜껑이 있는 윗 부분은 플라스틱이고 아래는 비닐이라 분리 배출도 애매했다"며 "지금 쓰는 설거지 비누는 식재료 세척에도 쓸 수 있는 1종 세제라 고무장갑 없이 써도 괜찮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대다수 고체 비누 업체는 '플라스틱 제로'뿐만 아니라 성분 측면에서도 친환경, 즉 천연 성분을 표방한다. 그래서 액체 세제에 들어가는 석유계 계면활성제, 실리콘, 파라벤 등과 같은 화학 성분을 첨가하지 않은 '순한 비누'가 대부분이다.
비누 공방에서 아예 나만의 비누를 만들어 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환경도 지키고 만드는 재미도 얻는 일석이조의 취미다. 친환경 비누·향수 공방인 '살림하우스' 김미경 대표는 "코로나19로 위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샴푸바를 만들면서 즐겁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에 비누를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 같은 수제 디자인 비누는 맞춤형 비누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김 대표는 "개인의 피부 상태에 따라 오일 종류를 선택하고, 좋아하는 향으로 블렌딩할 수 있다는 게 비누 만들기의 매력"이라며 "다양한 컬러와 모양으로 비누를 만드는 과정에서 몰입하고 힐링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누 공방 수강생인 추배연(41)씨는 "천연 오일로 나에게 맞는 비누를 만들어 쓰니 알레르기가 많이 나아졌다"며 "디자인이 예뻐서 선물하기도 좋고, 만들면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