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마술사

입력
2021.09.07 22:00
27면


20대 중반 수유동에 있는 빌라에 산 적이 있다. 채광이 잘 안 되는 집이라 집보다는 카페에서 작업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는 4·19 민주묘지 부근의 거리였다. 등산객들의 들뜬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군데군데 보이는 녹지와 나무 냄새로 부근에 등산로가 있음을 알 수 있는, 조용한 활력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의미로 아주 대단한 사람이 있었다. 4·19 민주묘지 공원 안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유행하는 팽이 장난감을 돌리거나 작당모의라도 하듯 모여 있다가 삽시간에 흩어져 뛰어 놀곤 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엔 거의 매일 그 아이들을 상대로 마술을 선보이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따뜻한 노년의 백발 마술사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이야기해두고 싶다. 세상에,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하찮은 마술은 처음 봤다.

그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동전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아이들의 귀 뒤로 동전을 허술하게 움직이다가 저만치 멀리 던져버리고는 동전이 저 쪽으로 사라졌다며 아이들에게 "주워 와!"라고 외치는 식의 마술들을 선보였다. 그러면 구경하던 아이들 일부는 착실하게, 일부는 어리둥절하게 서 있다가 성화에 못 이긴 누군가가 동전을 주워오면 다른 마술이 재개되었다. 다음 레퍼토리도 마술보다는 야바위라고 해야 할까. 거의 골려먹기에 가까워 보이는 행위들이었다.

나는 그 고약한 풍경을 보는 게 재밌었지만, 섣불리 아이들 틈에 끼어 구경하다가 동전을 주워 오고 싶진 않았기에 늘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 그들을 구경하곤 했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시시하게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더 이상 호응하지 않자, 그가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그가 내겐 어떤 마술을 선보일지 긴장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말하며, 두꺼운 책 세 권을 내밀었다. 스크랩북이었다. 펼쳐 보니 그 안에는 숨겨진 마법처럼 잡지의 이미지들을 콜라주한 풍경들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각도를 맞추기 위해 새롭게 사진을 촬영한 것도 있었는데, 주로 부부 내외의 모습이었다. 그 안에서 할아버지는 포르쉐를 타고 손을 흔들고 있거나, 할머니와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구름 사이를 비행하고 있었고, 할머니의 손에는 각종 명품브랜드 쇼핑백들이 걸려 있는 식의 콜라주였다. 명품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 입고 손을 잡고 있는 부부의 결혼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 그들은 스포츠카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이 작업을 왜 하시는 거냐는 나의 우문에 그는 돈이 없어도 이미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나는 다음번에 그의 집에 방문해, 그의 스크랩북을 더 구경하기로 했지만 늘 그와의 만남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다가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가지 못하게 됐고, 그를 마주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자주 그를 떠올렸다. 요새도 종종 그가 지금은 무엇이 되었고, 어디로 떠나고 있을지 궁금하다. 코로나 시국에 그는 더 이상 그 하찮은 마술을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어디를 여행하고 있을까.

상상력과 잡지 정도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는 물론 이상적이라 치부될 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자주 상상한다. 궁금하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윤단비 영화감독·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