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방을 앞세워 대북제재 완화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도 한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이다. 감염병 악재에 따른 북한의 경제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만큼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논리다. 제재 해제의 선결 조건으로 북한 비핵화를 내세운 미국의 태도가 워낙 완강해 당분간 북미 간 신경전에 변화를 꾀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4일(현지시간) “최근 안보리 회의에서 (대북제재 해제 문제가) 다시 제기됐고 여전히 협상 테이블에 있다. (제재 완화와 관련한) 어떤 상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1년 6개월 넘게 국경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제재 문제가 일부 해소돼도 당장 큰 변화를 주진 못할 것이라는 점을 들며 “과시적 제스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북제재 완화는 ‘보여주기’에 불과한 만큼 국제사회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북한의 요구도 러시아의 제재 완화 주장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6월 “무의미한 미국과의 접촉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리선권 외무상 담화 등을 통해 대화 복귀 조건은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제재를 풀지 않는 한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러시아는 적극 힘을 보태고 있다. 류샤오밍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안드레이 데니소프 주베이징 러시아 대사가 지난달 안보리 대북제재의 가역조항(스냅백) 가동에 공감한 게 대표적이다. 일단 대북제재를 푼 뒤에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다시 위반하면 제재 수위를 보다 높이자는 얘기다.
중러의 지원 덕에 북한으로선 일단 추가 제재 공포는 덜 수 있게 됐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토권’을 가진 양국이 북한을 옥죄는 새로운 결의안 채택에 찬성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중러를 든든한 뒷배 삼아 북미대화를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대북제재가 곧장 해제되지 않더라도 향후 북미협상에서 중러의 지지를 지렛대로 미국에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미국은 북중러의 제재 완화 전략에 전혀 말려들 생각이 없어 대치 국면의 반전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일각에서 북한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대북제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북한의 악의적 행동에서 주의를 돌리려는 ‘호도 전술’”이라고 단언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완화 문제가 거론됐을 때에도 곧장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