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한국말 가운데 선호하는 말 3개만 꼽으라면 어떤 어휘를 말할 것인가? 20여 년 전, 대학생들에게 선호하는 말과 싫어하는 말을 물은 조사 결과가 있다. 당시 대학생이 선호하는 말 10위 안에는 남녀 불문하고 ‘사랑, 우정, 행복, 희망, 꿈, 믿음, 평화, 바다’가 선정되어 있었고, 싫어하는 말로는 ‘죽음, 미움, 욕, 싸움, 거짓, 불행, 슬픔’이 있었다. 주목한 것은 여학생에게 선택받은 말 ‘하늘, 가을, 별, 순수, 맑다’ 등이다. 이 말들은 흥미롭게도 2000년대 들며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한류 드라마의 제목으로 이어진다. 그때 청춘이었던 대학생은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시간과 삶의 공간이 바뀐 그들에게 만약 같은 질문을 한다면 답이 달라질까?
말을 두고 ‘마음 밭에 뿌려지는 씨앗’이라 한다. 말에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 아이가 바른말을 쓰게 하려는 부모의 마음도 여기에 있다. 고유어는 한 나라의 문화와 꼭 닮았다. 만약 사랑하면서 표현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말이 존재할까? 한 예로 일본어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한자어로는 있으나 고유어로는 없다고 한다. 한 일본 문화 전문가의 해석에 따르면, ‘진정한 사랑이란 눈앞에서 하는 고백이 아니라 그 사람 뒤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일본의 전통 정서기 때문이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랑에 대한 고유어가 그 나라 말에 있을 리가 없다.
우리말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어떻게 다를까? 한국인 대부분은 ‘감사합니다’가 좀 더 공손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감사’가 한자어라서 격식에 잘 맞는다며, 심지어 아는 외국인에게 ‘고맙습니다’를 쓰면 결례라고 가르치는 이도 봤다. 과연 근거가 있는 말일까? ‘고맙습니다’는 전 국민이 다 보는 저녁 뉴스를 마치며 아나운서가 공손하게 하는 인사말이다. 그 어원인 ‘고마’는 ‘공경(하다)’의 순우리말로, 억지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을 담은 말이다. 고유어란 그 말을 쓰는 이들의 마음 밭에서 자란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문득 저기 문을 열고 누군가가 꽃 한 아름을 안고 들어오고 있다. ‘한 아름’이란 두 팔을 최대한 둥글게 모아서 만든 둘레, 또는 그만큼의 크기를 이른다. 한 아름 안고 온 것이 꽃다발인지, 혹은 그 사람의 마음인지 누가 알랴. 꽃 한 아름을 받아 안으며 ‘고맙습니다’라고 답하는 순우리말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말에는 우리의 체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