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의 준법운전 가능한 구조 속에서 더 엄격한 단속 부탁드린다"

입력
2021.09.05 14:00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많이 배달할수록 많이 버는 '건 바이 건'
신호 어겨야 인센티브 받는 구조 만들어
개인 준법운전 노력으론 변화 역부족
배달 업체에 안전 관리 의무 지우고
무리한 주행 안 해도 수익 보장해야
차 면허로 이륜차 타는 폐단도 바꿔야

사람이 죽었다. 근무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애도와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도 있었지만 망자의 잘잘못을 따지는 목소리가 컸다. 그가 속한 직군의 노동조합이 "산업재해"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그렇게 교통법규를 안 지키는데 사고가 일어난 건 당연하지."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교차로에서 배달노동자(라이더) A씨가 화물차에 치여 사망했을 때 온라인 여론은 이처럼 A씨의 법규 위반을 탓했다. A씨가 신호대기 도중 차선을 변경해 1차선 맨 앞에 있던 화물차 앞에 멈췄기 때문이다. 화물차 운전자는 사각지대에 있는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흘 뒤 같은 장소에서 또 사고가 나자 이번엔 거리낌 없는 조롱이 줄을 이었다. 신호위반으로 라이더들끼리 충돌한 사고였다. "솔직히 서너 탕 한 번에 하려고 신호위반하는 거잖아.", "자 이제 서로 죽여라."



현재의 배달산업은 도로에 돈을 뿌려 놓고 '먼저 주워 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구조다. 사실 도박판이다. 보통은 도박을 설계한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도로 위엔 설계자가 보이지 않는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라이더 안전사고는 많이 배달해야 많이 버는 일명 '건 바이 건' 체제가 낳은 폐단이라고 주장한다. 도박판에 다름없는 체제를 설계하고 참여한 이들이 더 있지만, 그 책임은 오로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공범(라이더)에게만 전가된다고 말한다.

그는 라이더의 준법 운전을 이끌려면 상위 설계자들에게 판을 보완할 것을, 즉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할 것을 강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라이더 개인을 비난하며 준법 운전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면서 말이다.

1일 서울 마포구 라이더유니온 사무실에서 박 위원장을 만나 배달 산업의 구조와 개선 방안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건 바이 건'의 설계자들

박 위원장은 먼저 라이더들이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못 박았다. 또 건 바이 건 체제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① 라이더 역시 공범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설계자들은 누구일까. 박 위원장은 ②비용을 아끼기 위해 배달을 외주화한 음식점주 ③건 바이 건을 고도화시킨 배달 플랫폼 ④신속 배달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지목했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건 바이 건 체계가 탄생한 것은 2000년대 초 음식점주들이 배달을 외주화하면서다. 박 위원장은 "다섯 가게가 한 명씩 라이더를 직접 고용했다가 수요가 못 미치자 라이더 세 명을 고용해 같이 쓰기로 했다. '월급은 누가 줄 거냐'를 논의하다 '건당 계산하자'고 한 게 건 바이 건의 시작"이라고 예를 들었다.

많이 배달할수록 많이 버는 구조, 즉 라이더끼리 경쟁을 해야 하는 체제는 '배달의민족(배민)'과 같은 배달 플랫폼이 생기면서 심화됐다.

플랫폼들이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은 과거 금기시됐던 '30분 배달제'다. 박 위원장은 "플랫폼들이 여기에 '번쩍' 또는 '치타'라는 새 이름을 붙이고 '소비 혁신'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했다"고 말했다.

30분 배달제는 라이더들의 사망사고가 잇따랐던 2011년 사고의 원흉으로 지목돼 여론의 비판을 받았었다. 그에 따라 피자업체들이 30분 배달제를 폐지하기도 했다.


알고리즘 도입 이후: 일명 '피크시간' 경쟁 심화

플랫폼들은 이어서 수요, 공급, 날씨 등에 따라 배달료를 초마다 달리 책정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문제는 알고리즘이 책정한 배달 단가의 변동 폭이 들쑥날쑥하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배달 최저 단가가 배민은 3,000원, 쿠팡이츠는 2,500원인데, '피크시간'대인 낮 12시~오후 1시에는 순간적으로 오른다. 한창 여름이었고 주문이 많았던 지난달엔 한 건당 8,000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단가 변동이 크기 때문에 이른바 피크시간에는 라이더들이 가급적 많이 배달해야 적정 수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신호를 위반하면서까지 빨리 배달하려는 근본 원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법규 위반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단건 배달: 오토바이 경험 적은 초보 라이더 대거 유입

최근 대중화되고 있는 '단건 배달(한 번에 한 집만 배송)'은 라이더 사이의 경쟁을 완화하지 않을까. 박 위원장은 그러나 "충분한 수익보장 없이 실시간으로 배달 단가가 변경되는 체계에서는 단건 배달로 피크시간대의 배달 전쟁을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단건 배달은 오히려 미숙련 배달노동자를 만들어내 도로를 무법지대로 만드는 부작용이 크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빠르게 단건 배달을 하려면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을 대기시켜 놓아야 한다"며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토바이 경험이 없는 초보 운전자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면허만 있으면 별도의 시험 없이도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다.


지역: 낮은 배달료→묶음 배송→시간 압박 악순환

박 위원장은 서울 외 지역은 아직까지 배달 대행업체가 강세라고 했다. 최소 배달료도 건당 2,500~3,000원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지역에서는 배달통에 음식을 6, 7개씩 넣는 묶음 배송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는 "지역의 배달료가 안 오르는 것은 대행업체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유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업체가 난립하고 누가 더 낮은 비용으로 운영하느냐 하는 영업 경쟁이 벌어진다고 했다.

또 지역 라이더들에게는 '시간 압박'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보통 '15~20분 이내 배송'을 약속하는데 지켜지지 않으면 음식점주가 대행 업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같은 배달 업체 소속 동료의 일감도 없어지는 거라 시간 준수는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득이 적어서 묶음 배송을 하는데, 묶고 보니 시간 압박이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라이더들이 '준법운전'해 봤더니...

라이더들이 난폭 운전에 대한 자정노력 없이 마냥 시스템 탓만 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더유니온에서는 조합원 중 경력자가 초보에게 안전 교육을 실시('안전교육 강사단')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선릉역 사고에서도 그랬지만 '대형트럭, 택배차량은 시야 확보가 안 돼 앞·뒤 추월이 모두 위험하다'는 등 교통 법규, 사고 유형에 관한 실질적인 교육들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 오는 날 맨홀 뚜껑, 횡단보도 페인트, 지하주차장이 미끄럽다'는 것도 알려 드리는데 오토바이를 한 번도 안 타 보신 분들은 이조차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밖에 '사무금융우분투재단'과 함께 운전경력 증명서상 범칙금 기록이 없는 라이더를 선정해 포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이더유니온은 그러나 준법운전 실험('신호데이')을 하면서 라이더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준법운전을 했더니 하루 평균 완료한 배달 건수와 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반면 배달에 걸리는 평균 시간은 증가했다.


라이더유니온 '신호데이' 실험 결과 요약
-일시: 2021년 6월 7~9일 -참가자: 서울, 부산 지역 배달의민족 소속 7명, 쿠팡이츠 2명, 요기요익스프레스 2명(총 11명) -실험 방법: 첫째날 일상 주행, 둘째날 '콜' 선택하면서 일상 주행, 셋째날(신호데이) 콜을 선택하며 준법운전 -준법 운전이란: 시속 50km 이하 유지, 교차로 신호등 준수, 차간 주행 자제(정차 중에는 시속 10km 이하로 앞으로 이동) -결과(둘째, 셋째날 비교): 배달건수·소득감소. 평균 배달 소요시간 증가 ① 하루 평균 완료 배달건수: 26.6건→18.7건(29% 감소) ② 시급 중위값: 1만6,931원→1만3,421원(20% 감소) ③ 일일소득 중위값: 11만4,853원→9만105원(21.5% 감소) ④ 평균 배달 소요시간(배민 소속 4명): 건당 23.3분→29.3분(25% 증가)


박 위원장은 "실험을 하며 장거리콜(통상 2㎞ 이상)은 대부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장거리일수록 신호에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라이더에게 콜을 거절한다는 것은 '일시적 실업상태에 빠진다'는 얘기다. 콜을 거절하면 다음 콜이 올 때까지 일 없이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쟁자도 늘어나는 추세라 콜 거절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라이더에게 가장 이상적 상황은 '음식 픽업(픽)→소비자 배송(배)→픽→배'가 끊기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정속 운전을 하니 도리어 자동차의 위협 운전이 늘어나는 모순도 겪었다. 뒤따라 오던 자동차가 오토바이를 스치면서 차로를 바꾸는 식이다. 박 위원장은 "오토바이에 준법 운전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오토바이를 차량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중적 시각이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시민들이 보기엔 라이더가 (안전 사고의) 범인이다. 이 문제로 라이더를 욕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신호를 위반할수록 인센티브가 붙는데 욕을 듣고 수십만 명의 라이더가 바뀌겠나"라고 되물었다.


대안 ①: "배달 업체 파악해 안전 의무 부과해야"

라이더유니온의 결론은 결국 '배달 업체에 안전 의무를 부과하자'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만이 배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들을 높이고, 사업자들이 소속 라이더의 준법 운전을 유도하는 구조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하는 것은 등록제를 시행해 사업자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배달대행업체들은 자유업종인 탓에 실태 파악조차 안 되는 실정이란다. 사업자가 누군지 알아야 의무도 부과할 수 있다.

이 내용을 담은 법안이 지난달 18일 발의된 '라이더 보호법(생활물류서비스법자동차관리법 일부 개정안)'이다.

라이더 보호법에는 배달 사업자들의 기본 의무도 담겨 있다. 사회보험 가입, 라이더 면허 확인, 표준계약서 작성, 안전교육 의무 등을 명시했다. 배달료나 배차 알고리즘이 불공정하다고 느껴 이의를 제기하면 조정을 위한 협의도 하도록 했다.

박 위원장은 이에 대해 "날씨가 궂거나 주말인데도 배달료가 낮게 측정되는 등 알고리즘이 예상가능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더보호법에서 사업자 등록제만큼 중요한 조항은 '안전배달료' 도입이다. 도로 위에서 무리하게 주행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수익을 보장하는 장치다. 박 위원장은 "화물연대가 과적, 과속의 원인인 낮은 수수료를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안전운임제에서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안전배달료는 최저임금과 유사한 개념인데, 책정도 매년 일정한 시기에 노사가 참여하는 '안전배달료논의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아직 책정 기준은 없으나, 박 위원장은 "보험료, 사회보험료, 지역의료보험, 유류비, 생활임금 등을 기준으로 잡으면 합리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대안 ②: 자동차 면허만으로 오토바이 배달하는 제도 개선

박 위원장은 라이더보호법과 더불어 교통제도의 변화, 특히 '자동차 면허만 있으면 이륜차를 운전할 수 있는' 제도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는 다르고, 배달 주소를 확인하면서 오토바이를 업무용으로 타는 것은 또 다르다"며 "한 번도 오토바이를 안 타 봤지만 자동차 면허증을 보여주면 라이더가 될 수 있는 현실 속 안전에 대한 고려는 없다"고 했다.

우리 도로에 이륜차를 고려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는 산업화 이후 자동차 고속도로부터 놓았기 때문에 이륜차의 특성을 이해하는 문화나 시스템이 없다"고 했다. 이륜차 정지선이나 소형 유턴 차로, 이륜차 주차장이 따로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박 위원장은 "우리는 단속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엄하게 단속하되 오토바이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도 '신속 배달' 개념 버려야 할까

그렇다면 건 바이 건의 마지막 설계자인 소비자들도 도로 위의 안전을 위해 '신속 배달'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할까. 박 위원장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배달산업은 공급이 수요를 결정해 왔다. 신속 배달은 소비자의 욕심이 아닌 산업의 욕심이다"며 사업자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택배가 당일·새벽 배송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는 예시를 들며 "그것까지 소비자의 욕구였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또 '30분 배송'의 부활, 단건 배달 도입 역시 플랫폼이 주도했다고 덧붙였다.


라이더를 비하하는 풍토 역시 배달업체의 협조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한 라이더는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이유로 동승자에게 "못 배웠다"라며 욕설을 들었다. 2월엔 동작구 한 학원의 셔틀버스 도우미가 라이더에게 "공부를 못하니까 배달이나 하고 있지"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박 위원장은 "개별 노동자가 '가만 안 있는다'고 하면 콧방귀를 뀌지만, 회사가 말하면 태도가 달라진다"며 "회사로부터 보호받는 존재라는 인식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배달 업체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심리적 상처는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예방을 강조했다. 이어 "배달 업체가 전화 연결음에 경고 사항을 띄운다든가, 음식점주에게도 주의를 주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또 라이더 보호법이 통과된다면 사업주들이 의무적으로 라이더의 감정노동을 보호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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