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쇼윈도, 5천원에 내놓은 여행가방... 이태원의 눈물

입력
2021.09.04 18:00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대로변의 한 패션 잡화 매장. 의류와 가방 등이 진열된 쇼윈도에서 파격적인 가격표가 눈에 띄었다. '메이드인코리아' 표시가 선명한 여행가방이 단돈 5,000원. 하지만 쇼윈도는 불이 꺼져 있고 점포의 출입문도 굳게 닫혔다. 점포 앞을 오가는 쇼핑객도 보기 어렵다. 주변 상인은 해당 점포가 이미 폐업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단 얼마라도 건져보려는 점포 주인의 한숨은 가격표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태원 패션 거리는 지금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폐업 또는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젊은층과 외국인들이 주로 찾던 명소 '이태원 세계 음식 문화의 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 이후 골목 여기 저기에 폐업 점포에서 나온 집기들이 가득 쌓여 있다. 클럽 등 젊은이들이 몰리던 유흥시설이 영업을 하지 못하는 데다, 외국인 관광객마저 한국을 찾지 못하면서 장기 침체에 접어든 것이다. 이날 외국인은커녕 내국인도 보기 어려운 거리에선 상인들 몇몇이 덩그러니 나와 앉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태원에서 기념품 매장을 운영하는 A씨는 "(오후 3시 넘도록) 아직 개시조차 못했다"며 한숨을 지었다. "옆(왼쪽) 가게는 몇 달 전 문 닫았고, 옆(오른쪽) 가게도 얼마 전부터 장사 접는다면서 세일 한다고 물건을 내 놓았어. 당최 외국인이 와야 말이지. 줄기만 하고 말이야. 35년 장사했는데 요즘 같은 경우는 처음이야. IMF(1998년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 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4차 대유행의 여파로 이태원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2019년 동기보다 82%나 금감했다. 주요 상권인 홍대(49%)와 건대입구(48%), 강남역(41%) 등의 매출 감소폭보다 훨씬 심각하다.

상권 자체가 흔들리다 보니, 이태원 일대엔 건물 전체가 비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적자를 못 견딘 입주 점포들의 폐업이 이어지면서 건물마다 외벽에 '임대' 문구만 덩그라니 붙어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이태원의 공실률은 31.9%에 달한다. 임대용 점포 3곳 중 1곳은 비어 있는 셈이다. 서울 전체 평균 공실률 6.5%에 비하면 5배나 높다.



용산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이태원 상권을 살리기 위해 임대료를 인하해 주는 '착한 임대인'에게 지원금 150만 원을 주고, 예비창업자 20명을 선발해 지원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미 고사 상태인 상권을 살리는데는 지원 수준과 범위가 턱 없이 부족한데다, 시기마저 늦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7년째 이태원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 모씨는 "지금 임대료 포함해 쌓인 영업 적자로 몇 달도 버티기 어렵다"면서, "하루 하루가 너무 너무 힘들다.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좀 나아지려나 기대는 해 보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언제 끝날 지 가늠조차 안되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이태원 상인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





고영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