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서구사회 백인 우월주의와 극단주의 망령을 깨웠다. 반(反)정부주의자 등 폭력 세력이 ‘골리앗을 꺾은 다윗’인 탈레반의 승리에 고무되면서, 미국에서는 또다시 노골적인 분열과 혼란 가능성이 꿈틀대고 있다. 여기에 서방 국가에 정착한 아프간 피란민 혐오 기류도 번지면서, 이슬람 공포증을 넘어 ‘외국인 증오’까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올 초 친(親)트럼프 극단주의자들의 워싱턴 국회의사당 난입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미국 정부는 다시 긴장하며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1일(현지시간) 아프간이 탈레반 수중에 떨어지면서 최근 몇 주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이들을 찬양ㆍ미화하거나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전했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건 주로 백인 우월주의자와 반정부 성향의 극우ㆍ극단주의자다. 제대로 된 장비조차 갖추지 못한 조직이 세계 패권국가를 물리쳤다는 점을 두고 미국 내 비주류인 극단주의자들이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방송의 설명이다.
문제는 단순한 ‘동경’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은 심지어 탈레반의 정권 탈환을 ‘성공’으로 규정하고, 미국에서도 내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테러ㆍ극단주의 활동을 감시하는 미국 비정부기구 SITE인텔리전스그룹은 “무장 조직을 모방하려는 욕망으로 극단주의 집단이 활기를 띠고 있다”며 “이들은 탈레반의 카불 점령을 ‘조국, 자유, 종교에 대한 교훈’이라고 떠받든다”고 전했다.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극우 신(新)나치주의자들이 탈레반의 △반유대주의 △동성애 혐오 △여성 자유 억압 정책에 찬사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시스트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서구의 백인 남성들이 탈레반 같은 용기를 가졌다면 우리는 지금 유대인의 지배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다.
이들은 반난민 정서에도 불을 지핀다. 수만 명의 아프간 피란민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몸을 피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백인의 소멸’마저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다. 미국 최대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의 조애나 멘델슨 부소장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난민을 ‘위험한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정도로 보기 때문에 난민이 늘어날수록 국가안보가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며 “온라인상에 퍼지는 아프간인 관련 폭력적 레토릭(수사)이 오히려 공공안전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가 음모론과 극단주의에서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움직임이 또 다른 폭력 사태의 불씨가 될 수 있는 탓이다. 국토안보부는 미국에 정착한 아프간인들이 극우단체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대비에 나섰다. 국토안보부 산하 정보분석국의 존 코언 국장은 “(아프간인이) 미국으로 이주할 경우 백인의 통제권과 권위가 무너져 내릴 것이란 게 극우 세력의 주장”이라며 “이런 정서가 (무슬림 등) 특정 종교 공동체뿐 아니라 전반적인 미국 내 이민자를 향한 폭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