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희망'이라던 푸드트럭,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21.09.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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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별명이 한때 ‘전국구’였어요. 전라도든 경상도든 가리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으니까. 푸드 페스티벌이나 영화제부터, 축구 경기, 기업 행사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누볐어요. 지금이요? 반토막 수준이 아니라 아예 10분의 1로 줄어들었죠. 그마저도 너도나도 하려고 드니, 하늘의 별따기예요.”


한 때 ‘전국’을 바삐 누비던 이성민(54)씨의 트럭은 지금 오래된 빌라촌 주차장 한편에 덩그러니 서 있다. 역세권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던 그는 해마다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6년 전 가게를 정리했다. 한몸처럼 익숙해진 조리도구만 단촐하게 남겨 시작한 게 바로 ‘푸드트럭’이었다. 정부가 나서 푸드트럭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창업을 독려하겠다는 뉴스가 한창 쏟아질 때였다. 더 이상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날 걱정이 없고, 전국 어디든 바퀴를 세운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이씨의 마음을 붙들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행사와 페스티벌로 먹고 살던 전국의 푸드트럭들은 한꺼번에 갈 곳을 잃었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자취를 감춘 푸드트럭의 근황을 추적했다.


어디에 세워도 ‘불법', "트럭 부숴버린다" 협박까지... 푸드트럭은 '乙 중의 乙'



“사실 매출은 공개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인데… 코로나19 이전 대비 30% 정도로 줄었습니다. 행사 일거리가 워낙 없다 보니 어쩌다 한 건 생기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하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씨는 ‘동네 장사’로 시선을 돌렸다. 주로 경기도 일대의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을 공략한다. 상권이 없다시피 한 곳은 그나마 2~3시간 정도 마음 놓고 장사를 할 수 있지만, 홍대 앞처럼 상권이 고도로 밀집한 지역은 얼씬도 못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상인들의 민심이 험악해진 탓이다.

‘상도의’를 지키기 위해 피크 시간대를 피해 트럭을 세워도 욕설과 협박이 난무한다. “요즘엔 어딜 가든 육두문자부터 날아와요. 인근 상인회 소속 사장님들이 다같이 몰려 와서 ‘또 오면 차 때려 부숴버린다’고 위협을 하기도 하고요. 가끔 한번씩 왔다 가면 바로 신고가 들어가더라고요.” 단속이 뜨면 꼼짝없이 벌금을 물어야 하니, 이씨는 요즘 저녁 장사 한 타임에만 3~4번씩 자리를 옮긴다. 쫓겨나고, 또 쫓겨나고의 반복이다.


현행법상 푸드트럭은 지역 축제 현장이나 지자체가 영업을 허가한 별도의 장소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다. 지역 축제는 코로나19로 줄줄이 취소됐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대개 영업 불가 지역이다. 주변 상인들의 반발이 조금이라도 예상되는 곳도 일찌감치 후보에서 탈락한다. 지자체 눈치 보랴, 지역 상인들 눈치 보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푸드트럭 점주들은 '을 중의 을'이다.


절반 이상이 '헐값에 트럭 팔았다'... '투잡' 뛰며 축제 재개 기다리는 이들도

푸드트럭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성지’ 밤도깨비야시장은 지난해 3월 문을 닫은 이후 18개월째 폐쇄 상태다. 올해 7월부터 열기로 한 ‘방역형 야시장’마저 4차 대유행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매일 애타는 마음으로 확진자 추이를 들여다보며 근근이 버텨오던 일부 점주들이 하나둘 단념하기 시작했다.


이씨와 함께 트럭을 나란히 세우고 ‘형, 동생’하며 지내던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자취를 감추었다.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2017년, 푸드트럭 영업에 호기롭게 뛰어들었던 청년들 대다수가 헐값에 차를 팔고 사라졌다. “푸드트럭 하려면 차량 개조하는 데에만 3,000만~4,000만 원은 드는데,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 1,200만 원 정도밖에 못 받죠.” 말 그대로 ‘피만 보고’ 사업을 정리한 것이다.

“트럭을 아직 가지고 있어도 생계가 유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한 10% 될까. 배달, 택배 같은 투잡을 뛰면서 다시 기회가 올 상황만 엿보죠. 희망고문이에요.” 애꿎은 주차비만 축내는 푸드트럭을 바라보며 오늘도 쓴 한숨을 삼킬 뿐이다.



아파트 장터에서 영업해도 ‘조마조마’... 배달 플랫폼 등록도 ‘그림의 떡’

지난 2017년 푸드트럭을 창업한 김정우(29·가명)씨에게 푸드트럭이란 한마디로 ‘길 위의 낭만’이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푸드트럭에 몸을 던졌다. 지금은 매주 서는 ‘아파트 장터’가 유일하게 기댈 언덕이다.


“아파트 장터 주최와 독점계약을 맺고 장사를 해요. 입점비도 제공하지만, 구청에서 나와 문제를 삼으면 꼼짝없이 벌금을 내야 해요. ‘허가된 구역’이 아니니까요. 자릿값을 내도 ‘불법 노점’과 다를 바 없으니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죠.”

아파트 장터 입점비는 하루 평균 3만~4만 원. 크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지만, 한 달이면 100만 원가량의 고정비가 발생하는 셈이다. “거리두기가 격상될수록 아파트 장터도 잘 안 열리거든요. 그마저도 몇 군데는 7월부터 운영을 아예 중지해버렸어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활로를 뚫어도 얼마 못 가 무용지물이 돼버리니 억장이 무너진다.



푸드트럭은 배달 주문 플랫폼에도 등록할 수 없다. ‘옮겨 다닐 수 있다’는 특성상 일반 음식점이 아니라 ‘휴게 음식점’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지역 기반으로 운영되는 배달 서비스 특성상 푸드트럭 같은 ‘이동형 업체’는 자격이 안 된다. “음식의 90% 이상이 ‘포장’이에요. 집 가까운 곳에서 사다가 가족들이랑 나눠 먹는 정도죠. 방역 원칙이 허락하는 선에서 숨통이라도 틔워주면 안 되는 건가요?”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원하는 곳에서 장사할 권리’

이씨와 김씨 같은 푸드트럭 점주들이 입을 모아 요구하는 것은, ‘원하는 곳에서 장사할 권리’다. 특히, 지자체가 지정해 준 장소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는 '허가제'의 개선을 원했다. 한번 계약하면 ‘오직 한곳에서만’ 붙박이 장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지자체 지정 장소는 음식 장사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허가해준 장소랍시고 가보면, 종일 나와 있어도 매출 10만 원도 안 나오는 곳들이죠. 지자체에서 일방적으로 ‘우리가 정해준 데에서만 해’라고 할 게 아니라, 푸드트럭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가 어디인지부터 들어야 한다고 봐요.” (이성민)

이씨는 지난해 동료 점주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 내 영업만이라도 허가해 달라’며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어느 과에 접수되건 ‘담당 소관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하염 없이 이 부서, 저 부서를 전전하다 결국 묵살됐다. ‘아파트 단지’만이라도, ‘여름 한철만이라도’라는 간절한 단서를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여름이 가면 금세 겨울이 온다. 야외에서 장사하는 푸드트럭 점주들에게 겨울은 남들보다 더 춥고 시린 계절이다.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장장 5개월, 코로나19 장기화의 그늘이 이중으로 덮친 이번 겨울은 유난히 더 혹독할 예정이다.


박지윤 기자
김지우 인턴기자
한아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