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소각 용량 검토 없이 늘린 시…60명이 암으로 죽었다

입력
2021.09.09 04:30
8면
청주시, 규정 어기고 하루 24톤→108톤 소각 허용
익산 비료공장은 지자체와 선물 주고받은 정황
주민들 대책 마련 요구에 시간 끌기, 떠넘기기로 일관

[국가가 버린 주민들]<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④화 돋우는 지자체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생태탐방로 조성 사업 중 업자로부터 뇌물 900만 원을 받아 해임된 공무원. 전북 익산시가 2017년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조사를 앞두고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면서 추천한 소위 '전문가'의 이력이다. 심지어 2001년 문제의 발암물질 배출업체인 ‘금강농산’을 인허가해준 담당 주무관이기도 했다.

2015년 충북 청주시 북이면의 폐기물처리업체 클렌코가 1호기 소각시설의 하루 소각처리용량을 기존 24톤에서 무려 108톤으로 늘리겠다고 청주시에 제출했다. 하루 100톤 이상이면 입지 여건 변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청주시는 그냥 허가했다. 이곳은 3개 기업이 하루 총 540여 톤의 쓰레기를 태우며, 주변에서 100명 이상의 암 환자(60명 사망)가 발생했다.

오염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지방자치단체는 지원군이 아니라 차라리 '적'에 가깝다. 기준도 지키지 않고 오염시설을 허가하는가 하면 수많은 항의와 민원을 뭉개고, 떠넘기고, 심지어 가해자들과 결탁해 주민들을 지치게 하는 사례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주민들 편에 서는 지자체만 있어도 이렇게 절망이 깊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충대충...규정 잘못 적용, 문서 점검도 안 해

현행법(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 1일 처리능력이 100톤 이상인 소각시설은 ‘도시계획시설 결정대상’에 해당돼 입지여건 변화를 검토해야 했다. 북이면의 소각공장 중 한 곳인 클렌코가 2015년 1일 처리능력 24톤짜리 소각로를 없애고 108톤짜리 소각시설을 새로 짓겠다고 했을 때, 공장이 들어선 곳의 입지와 주변을 살폈어야 했다.

청주시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허가(사업계획적정통보)했고, 이 사실은 청주시 내부 감사에서 추후 적발됐다.

건축허가 과정도 문제였다. 폐기물처리업을 하려는 업체는 사업계획서를 내서 적정통보를 받아야 하고, 이를 토대로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클렌코는 적정통보는 ‘폐기물처리시설 중간처분시설(일반소각로)’로 받았고, 건축허가는 '폐기물재활용시설'로 받았다. 건축허가 신청을 받은 청원구청과 청주시 모두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그냥 재활용시설로 허가를 내줬다.

하루 소각량 100톤이 넘는 폐기물처분시설은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의 심의 및 인가를 거쳐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재활용시설은 규제 없이 곧바로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클렌코는 쉽게 건축허가를 받아 소각로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업체가 소각시설을 돌리기 앞서 시설결정 신청을 한 뒤에야, 문제가 감지됐다. 도계위는 업체에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오도록 했고, 업체는 ‘내수읍ㆍ북이면 주민협의체’라는 단체와 함께 상생협약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런데 해당 서류에는 ‘내수ㆍ북이 공동발전위원회’라는 이름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박미자 청주시의원은 “도장의 단체명은 청주시와 충북 청원군이 통합될 당시 만들어진 직능단체의 이름으로 현재 유명무실한 단체”라며 “이 단체에 속했던 주민 중 일부가 당시 도장을 협약서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주민협의체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도계위는 시설결정 인가를 내줬고 이에 따라 2017년 1월 청주시는 변경허가(폐기물처분시설의 신설 허가)를 내줬다. 결국 하루 100톤이 넘는 소각은 현실이 됐다.

클렌코는 변경허가 승인이 나기 전부터 소각로를 가동해 과징금 5,000만 원을 부과 받았고, 이후 미세먼지 대책 일환으로 동부지검이 기획수사에 나서면서 허가량보다 약 1만3,000톤 많은 폐기물을 태운 사실이 적발됐다. 2017년 1월 1일~ 6월 4일 기준보다 무려 131~294%의 폐기물을 과다소각했다. 부당 이익은 15억 원 상당으로 추정됐다.

한국일보는 클렌코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접촉했으나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늑장 대처도, 법원의 업체 편들기에 막혀

2018년 2월 청주시는 클렌코에 ‘폐기물 중간처분업 허가취소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이 소각시설은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

여기엔 법령의 애매함과 업체의 입장을 적극 반영한 법원의 법리해석이 한몫했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29조1항 2호)에는 변경허가 대상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 중 '폐기물처분시설의 증설, 개보수,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허가 또는 변경허가를 받은 처분용량의 100분의 30 이상을 변경'할 경우 다시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허가량의 130% 이상 소각이 있으면 '그 밖의 방법으로'에 해당돼 허가 취소 근거로 봐 왔다"고 설명했다.

클렌코가 청주시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불법 증설이 아닌 과다소각은 허가취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업체에 유리하게 시행규칙을 해석하고, 클렌코의 손을 들어줬다. 과다소각이 조항상 '그 밖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암이 집단 발병한 북이면 주민들이 여전히 이 소각로의 연기를 마셔야 하는 이유이다. 환경부는 과다소각도 허가취소 사유가 되도록 시행령을 개정 중이고 연내 시행한다는 계획이지만, 소급 적용은 안 되기 때문에 과거의 과다소각으로 클렌코를 허가 취소할 수는 없다.



업체와 지자체 간 결탁 의혹도

“명절만 되면 익산시에서 비료공장으로 선물세트를 보내왔어요. 트럭에 ‘익산시’라고 적혀 있었어요. 공장에서는 직원들한테 치약, 샴푸 같은 선물세트를 분배해서 줬고요. ‘시에서 왜 공장에 이런 걸 보내나’ 했죠. 아마 공장에서 시에 돈을 주다 보니 시에서도 답례한 것 아닌가, 했는데... 실제로 공장에서 시에 돈을 줬는지는 몰라요.”

익산 장점마을 인근 비료공장(금강농산)에서 15년간(2003~2017년) 일한 김인수(69)씨가 기억하는 명절 풍경이다. 이상한 건 명절 때만이 아니었다. 공장 악취와 저수지 물고기 집단 폐사로 주민들이 익산시 등에 민원을 넣을 때면 더 의아한 광경이 펼쳐졌다.

“익산시나 전북보건환경연구원에서 현장 점검을 오는데, 공장에서는 어떻게 알고 미리 공장 전기를 내려버려요. 전등까지 전부 소등하고 소각로도 안 돌려요. 오후 3, 4시에 공장 직원들이 출근해 있는데 불은 다 꺼져 있는 거예요. 현장 점검 온 공무원들도 ‘뭔가 이상하다’ 낌새를 채야 되는데, 그냥 형식적으로 불 꺼진 공장에서 오염도를 측정하고 돌아갔어요. 그러니 직원들 사이에서 ‘(공장이 시에) 뒷돈 준 거 아니냐’라는 말이 나왔지요.”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지자체에 아무리 민원을 넣어도 비료공장 악취가 멈추지 않았고 암에 걸려 사망하는 주민이 늘어간 이유로, 주민들은 지자체와 업체의 결탁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건에 관해서는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내막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또 있다. 임형택 익산시의원은 2017년 9월 익산시에 '비료공장의 담뱃잎 찌꺼기(연초박) 공급 내역' 자료를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시에 연초박 관련 자료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시가 같은 해 4월 임 의원에게 제공한 자료에는 공장이 2003년부터 연초박을 사용했다고 적시돼 있다. 불과 5개월 만에 자료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임형택 시의원은 “2017년 4월까지만 해도 연초박이 핵심 오염원으로 의심받지 않았다"며 “시가 별 문제의식 없이 자료를 제공했다가 이후 연초박이 중요해지자 ‘자료가 없다’고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는 "4월에 제공한 자료에 '연초박' 표기는 오기로 보인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산시가 뇌물 수수 공무원 출신을 민간협의체에 추천한 데 대해서도 임형택 시의원은 “자격이 없는 위원을 ‘환경 전문가’라는 이유로 추천하는 반면, 주민 측이 요구한 전문가 위촉은 부담스러워했다”며 “본인들 입맛에 맞게 보고서 써주는 사람을 위원으로 위촉하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주민 측 문제 제기로 해촉됐다.



시간 끌고, 떠넘기고

최옥경 인천 서구 사월마을 비상대책위원회 회장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주민대표 업무를 맡은 지 몇 개월 됐거든요. (문제 제기 후 대책 마련 없이) 시간이 흘러간 지는 5년 됐고요. 몇 개월 했는데 지금 한 30년 한 것 같은 기분이네요."

최 회장은 "뭐든지 공무원들은 '추진해 보겠다, 검토해 보겠다' 하다가 1년 있다가 딴 데로 전근 가고 또 새로운 사람이 와서 또 '검토, 추진' 계속 이런 식이에요"라고 했다. 주민들이 암과 호흡기 질환 등에 걸려 사망하고, 중금속 오염으로 눈에 쇳가루가 들어갈 정도지만 치료비 지급도, 이주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주민들은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위해 모발 검사를 하고 '체내 중금속이 과다하다'는 진단을 받을 때도 사비를 털어서 해야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사월마을 주민들과 인천 서구청의 회의 자리에 구청 공무원은 주민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중금속 방출의 책임이 있는 폐기물업체 대표를 불렀다.

업체 대표들은 이전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개를 풀어 “물어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고무호스로 물을 뿌리고, 실제 흉기를 들이대는 경우도 있어 주민들과는 원수였다. 그런데 공무원은 “원만히 합의를 해보라”고 했다. 결국 회의장엔 고성이 오갔다. 권씨는 “업체 대표가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하며 살해 협박을 했다”며 “공무원이 상황 파악도 하지 않고 대표를 그 자리에 부른 것”이라고 했다.

익산 왈인마을 주민 박경선씨는 수개월째 매일같이 환경부와 익산시청, 전북도청을 쫓아다니고 있다. 왈인마을은 장점마을과 불과 1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암 발병, 피부 질환 등 비슷한 피해를 입었지만, 장점마을과 달리 의료비 한 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시에 가면 ‘도에 알아보라’고 하고 도에 가면 ‘환경부에 가라’며 등을 떠미는데 논빼기에서 나락이나 빚고 콩이나 빚는 놈이 그 상황을 어떻게 알겠냐”라며 “이웃과 가족들이 전부 아파서 비교적 젊은 사람이 나서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돈도 없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너무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전북도를 취재해보니 사실관계 파악도 제대로 안 하고 있었다. 전북도 관계자는 “의료비 지원은 익산시가 하고 있다”며 “왈인마을 주민이 이야기하는 것은 보상해 달라는 것인데 지자체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답했다. 왈인마을에는 의료비 지원이 없는데도, 이를 모르고 주민 요구를 ‘보상 요구’라고 일축한 셈이다. 기자가 전후 설명하고 지원 여부를 물어도 “건강영향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만 반복해 되돌아왔다.

주민들의 울화병

지자체가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동안 오염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주민들 마음은 무너져만 간다. 피해 마을 주민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사월마을 권순복씨는 말했다. “마을을 보면 울화병이 나요. 처음에는 여기가 참 좋아서 원래 이름이 '속세우지'였어요. 옛날에 한 사람이 여기 와서 보니까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산이 있어 속이 시원하다'며 여기에 정착하자고 해, 주민들이 여럿 와서 산 거죠. 속이 시원하니까 '속세우지'라고 이름을 진(지은) 거예요. 얼마나 좋았겠어요, 여기가. 앞에는 바다죠. 갯벌이어서 게 잡지 맛조개 잡지. 염전이 있어서 소금 나오지. 저수지가 있으면 애들이 망둥이(어) 잡으러 오죠. 전부 그렇게 하고 살아 왔어요. 우리 동생들이 망둥이 잡아가지고 이만하게 껴서 끌고 와요. 감자 넣고 조려 달라고. 그랬던 동네가 이렇게 되어버렸어. 말도 못해요 정말.”

◆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②배상은 어디에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④화 돋우는 지자체

※매주 월·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천·익산= 김현종 기자
청주= 박주희 기자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