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공신' 박병석 의장, 물밑에서 바쁘게 중재했다

입력
2021.09.01 08:00
30일 "여야가 합의해 오라" 입장 고수
민주당 언론중재법안 본회의 상정 거부
언론인·민주당 원로들 비공개회동 '분주'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폭주'를 멈춰 세운 동력 중 하나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합의 정신'이었다. 박 의장은 전 국회의장, 언론인들과의 간담회를 수차례 걸쳐 진행하면서 여야 합의 단초도 적극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 디데이로 잡은 30일, 박 의장은 "여야가 합의해 오지 않으면 민주당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박 의장이 민주당 출신인데도 그랬다.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박 의장은 현재 무소속이다.

국회법은 국회의장에게 법안 등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할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의사일정 작성권)이 있다고 명시한다. 역대 국회 사례를 보면, 여야가 충돌할 때 국회의장이 출신 정당의 요구를 수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박 의장이 결단했다면, 30일 밤 민주당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 의장은 일단 '중립'을 택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대표 회동을 이날 네 차례나 주재하면서 "합의가 먼저"라고 버텼다. "21대 국회를 향한 국민의 명령은 바람직하지 않은 익숙한 관행과 단호히 결별하고 일 잘하는 국회를 만들라는 것"이라고 박 의장이 국회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밝힌 대로다. 6선 의원을 지낸 의회주의자이자 신문기자 출신인 박 의장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 시도를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론을 내는 것이 박 의장에게도 쉽지 않았을 터다. 상당한 고민을 방증하듯, 박 의장은 지난 27~29일 여러 차례 비공개 회동을 했다는 전언이다. 우선 민주당 상임고문단인 문희상·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과의 간담회 자리를 박 의장은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는 '본회의 전에 전원위원회를 며칠에 걸쳐 진행하는 것이 어떤가' 등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전원위 소집을 요구한 민주당과 더 협의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사이에서의 대안인 셈인데, 사실상 박 의장이 당 원로들에게 '중재'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전직 국회의장들은 30일 송영길 당 대표와 만나 "한박자 늦춰야 한다" "여러 사람들과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박 의장은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도 비공개로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부영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인 1979년 11월 13일 윤보선 전 대통령 자택에서 긴급조치 해제와 언론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다. 최근 42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의장이 이부영 이사장을 따로 만난 것은,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만큼이나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도 중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은 박 의장의 '중립'에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여야 줄다리기가 진행된 30일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박 의장이 야당과 협상해 오라고 하니, 갑갑하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당내 강경파는 박 의장에게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주도한 김승원 의원은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병석~ 정말 감사합니다. 역사에 남을 겁니다. GSGG"라고 썼다 지웠다. 'GSGG'가 '개새X'를 가리킨다는 논란이 커지자, 박 의장을 만나 사과했다. 김용민 의원도 "박 의장의 합의 상정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것 같았다"며 에둘러 비판했다.

강진구 기자
신은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