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완료함에 따라 일본에 협력했던 아프간인 등 약 500명을 대피시키기 위해 파견됐던 일본 자위대기도 곧 철수한다. 한국을 비롯해 다수 국가가 자국민과 아프간인 협력자를 수백~수천명 대피시킨 반면 자위대기는 일본인 1명을 대피시키는 데 그치자 일본 언론이 일제히 비판했다.
31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기시 노부오 방위장관은 아프간 대피 작전을 위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대기중이던 수송기 3대의 철수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국외로 탈출하지 못하고 현지에 남아 있는 인원에 대해선 탈레반 측과 협상해 기회를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23일 대사관이나 국제협력기구(JICA)에서 일했던 아프간인 직원과 가족 등 약 500명의 대피를 위해 자위대 수송기 3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공항으로 대피 대상자를 이송하지 못해 지난 27일 밤 일본인 1명을 대피시키는 데 그쳤다. 26일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아프간인 14명을 수송했으나, 일본 정부의 대피자 명단에 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사히신문은 “결과적으로 많은 아프간인을 남긴 채 자위대를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매우 유감이며, 정부는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사설을 통해 비판했다. “아프간 정권 붕괴 이틀 후에 재류 일본인 보호를 사명으로 하는 일본 대사관 직원 12명 전원이 영국 군기로 출국한 판단도 의문”이라며 대사관 직원의 전원 철수를 작전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요미우리신문은 심층분석 코너인 ‘스캐너’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대피 작전을 비교했다. 애초 미군으로부터 “카불의 일본 대사관을 보호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 15일. 대사관 직원들은 17일 영국 군기를 타고 전원 아랍에미리트로 탈출했다. 20일 외무성이 자위대기의 파견을 의뢰했지만 총리 관저에서 방침이 결정된 것은 22일이었다. 각국 군용기가 아프간 협력자를 태우고 속속 카불에서 빠져나오던 23일에서야 C2 수송기가 출발했다.
한국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아프간 협력자를 공항에 모이도록 하는 부분이었다고 요미우리는 지적했다. 한국은 25일 미군의 협력으로 확보한 버스 6대를 사용해 365명을 공항으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일본은 하루 늦은 26일에야 버스가 준비됐다. 바로 이날 카불 공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버스 대피를 포기했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는 “일본 대사관은 아프간 밖에서 원격으로 지원했지만 한국 대사관 직원은 카불로 돌아가 버스 등을 준비했다”며 “스가 총리가 지도력을 발휘한 흔적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요미우리는 “헌법상의 제약도 있었다”며 이번 실패가 자위대기의 해외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헌법 9조’ 때문이란 주장도 전했다. 자위대법 상 해외 인명 수송은 “안전한 상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카불 공항 이외에서의 작전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우익 세력의 인식과 비슷하다. 최근 아프간 대피 실패 관련 기사마다 ‘헌법 때문’이라며 일본 정부의 실책에 면죄부를 주고 개헌을 주장하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의 결정적인 실책은 군용기 파견이라기 보다는 아프간인의 이송이었고, 한국 역시 공항 밖에서의 이송은 군이 아니라 대사관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는 분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