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활용해 자기 자본 없이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회사 지분을 확보한 뒤 수천억 원대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로 기소된 신라젠 전 경영진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부장 김동현)는 30일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은상 전 신라젠 대표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350억 원을 선고했다.
문 전 대표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곽병학 전 신라젠 감사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175억 원이 선고됐다. 보석으로 풀려났던 문 전 대표와 곽 전 감사는 이날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됐다. 페이퍼컴퍼니의 실질적 사주인 조모씨에 대해서도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175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문 전 대표에 대해 "신라젠 대표이자 대주주로서 자금 돌리기 방식에 의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주도해 신라젠과 자본시장에 심각한 피해와 혼란을 야기했다"며 "시장 신뢰를 깨뜨리는 사기적 부정거래 행위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 등이 지인에게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부여하면서 자신들 몫을 포함해 38억 원 상당을 돌려받은 혐의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신주인수권 행사로 막대한 이득을 취득했음에도 회사 발전을 위해 기여한 사람들에게 지급돼야 할 스톡옵션마저 개인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특허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대금을 부풀려 신라젠에 29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와 자본잠식 상태인 자회사에 500만 달러를 대여한 배임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또 신라젠 상장 후 주가 조작이나 미공개 정보 이용 등의 불법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봤다.
실형을 선고받은 문 전 대표 등과는 달리, 함께 기소된 이용한 전 대표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전 대표의 경우 BW 발행과 관련해 다른 경영진 의견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처분한 주식이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 신라젠 창업주이자 특허대금 관련사 대표인 황태호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문 전 대표 등은 2014년 자기 자본 없이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대금을 가장 납입해 신라젠이 발행한 BW를 인수한 뒤, 신주인수권을 교부받아 행사하면서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됐다.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에서 페이퍼컴퍼니인 크레스트파트너에 350억 원 상당을 빌려주고, 당일 문 전 대표 등이 이를 크레스트파트너에서 빌렸다. 이후 문 전 대표 등이 신라젠 BW를 인수하면서 회사 지분율을 높였다. 신라젠에 입금된 BW 자금은 다시 크레스트파트너에 넘어갔고, 크레스트파트너는 동부증권에서 빌린 돈을 상환했다. 결국 신라젠에 자금 조달 효과는 없었지만, 문 전 대표는 신주인수권 1,000만 주를 행사하면서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문 전 대표는 신라젠 상장 이후 주식을 처분하면서 1,900억 원 상당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2016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신라젠은 면역항암치료제 '펙사벡(Pexa-Vec)'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불과 1년 만에 주가가 10배 이상 폭등했다. 그러나 임상 3상 실패 등으로 주가가 폭락했고, 문 전 대표 등이 수사를 받게 되면서 지난해 5월 주식거래가 정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