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20년 전쟁…미국인은 더 불안해졌다

입력
2021.08.30 16:00
24면

편집자주

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아프간 전쟁이 31일로 마침표를 찍는다. 미군 철수 완료도 전에 아프간은 20년 만에 탈레반의 나라로 돌아갔다. 2001년 10월 시작된 전쟁은 초기엔 미군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주요 전투가 2개월 만에 끝날 만큼 미군은 연전연승했고 친미 정권수립에도 성공했다. 미 정부가 수용하지 않았지만 당시 탈레반은 정신적 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항복을 제안했을 정도로 몰렸다. 미군이 2002년 여름이면 고향에 돌아갈 꿈에 부푼 것도 당연했다.

아프간 전쟁의 목표가 바뀌면서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미 정부는 9·11테러 재발을 막기 위한 것에서 테러세력의 근절, 친미 아프간 정권의 수립으로 전쟁 명분을 확대했다. 전장과 상대할 적도 아프간의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국한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아프간 역사를 무시한 치명적 선택이었다. 아프간 전황은 점차 1970년대에 시작된 종족 갈등의 내전에 빠져들었고,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미 대통령들은 철군 문제를 후임자에게 미루고 또 미뤘다.

그 사이 전쟁 이름은 ‘테러와의 전쟁(GWOT)’에서 ‘해외비상작전(OCO)’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대신 ‘기나긴 전쟁(long war)’으로 불렀다. 랜드연구소의 브라이언 젱킨스 선임연구원은 5년 전 보고서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알지 못했으며, 그런 사실에 놀라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결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철군을 앞두고 “전쟁 목표가 아프간 정부 수립이 아니었다”며 과거 실수를 에둘러 인정했다.

아프간 전쟁 결과로 미국은 더 안전해지긴 했다. 테러경계 수준이 올라가 9·11과 같은 테러 기획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미국인의 테러 희생이 급속히 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전후 수십 년 감당해야 할 전쟁비용을 비롯한 대가는 혹독했다. 미군 2,500명과 민간 계약자 4,000여 명이 희생됐고 아프간인 희생은 민간인 5만을 포함해 16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테러의 공포는 더 올라갔다. 미국을 겨냥하는 테러 세력은 다양해졌고 더는 상징물이 아닌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장소를 테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알카에다만 해도 아프리카북부, 소말리아, 시리아, 예멘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미국은 안전해졌을지 몰라도 미국인은 안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9·11 사태가 발생한 해에 태어난 미군 5명이 지난 26일 카불 자살폭탄 테러로 희생된 것은 이처럼 복잡한 아프간전을 응축해 보여준 비극이다.

이태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