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아이들의 "한국인 친구"

입력
2021.08.3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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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해맑았다. 안면을 트자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로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저도 한국 친구가 있어요." "한국 노래도 알아요." "한국은 좋은 나라." "카메라 좀 빌려주세요, 사진 찍어줄게요." 덕분에 뜻하지 않은 기념촬영까지 했다.

아이들은 모르고 있다. 부모 또는 자신의 조국에서 두 살배기가 압사당하고,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들이 철조망 너머로 내던져지고 있다는 사실을. 낡은 건물에 친 텐트가 집이고 건물 앞 공터가 놀이터지만 그들은 적어도 안전했다. 고단한 세상살이 접어두고 웃고 떠드는 건 아이들의 특권이다.

어른들은 침통했다. 대개 7~8년 전 탈레반을 피해 조국을 떠난 터라 이번에 화를 면했지만 두고 온 가족을 걱정했다. "4주째 어머니와 연락이 안 된다." "탈레반을 소탕하려던 아프간 정부군 폭격으로 고향 집이 폐허가 됐다." 그들은 평상에 모여 앉아 이방인을 응시했다.

어른들은 알고 있다. 정치인은 달아나고 민간인은 부역자나 반역자로 몰려 공개 처형되거나 테러의 희생양이 되는 조국의 현실을. 한 난민이 말했다. "탈레반은 모든 것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들의 말이 곧 법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아프간에 있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서쪽 칼리드르스(kalideres) 아프간 난민촌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은 인사로, 어른들은 눈빛으로 전하는 배웅이 뒷목을 당겼다. 전화로 또는 직접 만난 아프간 난민의 바람은 한결같았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탈레반의 그간 행적, 오랜 기간 발이 묶인 자신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적이 절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기적은 시나브로 오고 있다. 난민 아이들 웃음과 한국에 대한 호감의 비결을 뒤늦게 알았다. 이곳 자유교회 한인 학생들은 4년간 매번 10주씩 6차례에 걸쳐 대면 또는 온라인으로 난민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 춤을 가르치며 친구가 됐다. 어른들의 무정한 논쟁보다 서로 벗이 되는 아이들의 방식이 더 어른스럽다. 그들에게 약속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